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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이

張俊伊

미상 ~ 1908.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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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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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포상 정보

  • · 애국장(2006)

관련 사건

  • · 후기의병(강원도 삼척
  • · 경북 울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6) 출신지나 출생 연월일, 거주지 등 기타 자세한 인적사항은 확인되지 않으며 강원도 삼척(三陟)·울진(蔚珍) 등에서 활동한 의병장이다. 일제는 1907년 7월 24일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강제하며 대한제국 군대의 해산을 강행하였다. 이에 따라 1907년 이후 많은 해산 군인이 의병운동에 가담하며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갔다. 강원 지역에서는 원주진위대 특무 장교 출신 민긍호(閔肯鎬)의 봉기를 비롯해 인근 여러 지방에서 의병들이 크게 봉기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원 영동의 삼척(三陟)과 울진(蔚珍)일대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울진은 1907년 8월 이후 의병부대 활동 내역을 정리한 「폭도사편집자료(暴徒史編輯資料)」의 강원도 편에 원주·춘천(春川)·금성(金城)·강릉(江陵)과 함께 포함된 지역일 만큼 의병운동이 활발했던 지역이었다. 당시 일제의 의병 탄압과 근거지에 대한 초토화 작전이 더욱 심해졌지만 강원도 일대에서는 꾸준히 의병부대의 활동이 지속되며, 삼척과 울진 인근에서도 여러 차례 일제 군경과 교전을 벌이고 있었다. 1908년 5월 삼척 도계리(道溪里)·가곡동(柯谷洞) 등에서 일본군과 접전하여 많은 의병이 사망하는 피해를 입었다. 6월 1일에도 삼척 관내에서 50여 명의 의병부대가 일본군과 교전을 벌여 20여 명이 사망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19일에도 소규모 의병부대가 노곡면 북방으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일제 군경과 접전을 벌이다 1명이 사망하였다. 관련 기록이 부족해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이 무렵 삼척 일대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여러 전투의 일부에 참여했을 것을 짐작된다. 그러한 가운데 1908년 6월 30일 삼척군 하장면(下長面)에서 의병부대를 탄압하기 위한 출동한 일본군 수비대와 치열한 교전 중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2006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원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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