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홍집
張洪執1860 ~ 1910. 2. 1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김동구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전라북도 순창군(淳昌郡) 하동면(河東面) 원치리(遠峙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860년생으로 추정된다. 의병활동 당시에는 주막을 운영하고 있었다. 50여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전북 동부지역인 순창군·임실군(任實郡)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한 김동구(金同九) 의병부대의 활동에 협력하였다. 1905년 외교권의 박탈과 1907년 군대해산으로 일제의 침략 강점에 의한 식민지화 의도가 노골화되자, 신분과 사상 차이를 막론하고 전국 각지에서 의병의 봉기가 이어졌다. 이에 전북 동부지역에서도 이석용(李錫庸) 의병부대가 거의하여 진안군(鎭安郡)·임실군·순창군 일대에서 대규모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1909년에는 김동구가 김막동(金莫同)·김상천(金祥千)·박치근(朴致根)·한자선(韓自先)·박화숙(朴化淑)·최석봉(崔石奉) 등의 추대를 받아 의병부대를 조직하고, 전북 동부지역뿐만 아니라 전북 옥구군(沃溝郡)·태인군(泰仁郡) 등으로까지 활동영역을 확대하며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김동구 의병부대는 무장투쟁 못지않게 군자금 징수, 물자 징발에 주력하는 양상을 보였다. 또한 주목할 점은 주막업자들과의 연계가 상당하였다는 것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산악지대에서 물자가 집적되거나 혹은 노획물자를 처리하고, 정보수집 및 행상 유치 등에 거점이 될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이 주막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는 김동구 의병부대의 주요한 활동지대 중 하나였던 임실군에서 검거된 52명의 의병활동자 및 협력자 가운데 약 10% 정도인 5명이 주막업에 종사하고 있을 정도로 비교적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례는 배성집(裵聖執)과 같이 물자제공, 의병 정보 은닉, 경찰관의 활동 사전 통보 등 의병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자가 있었던 것에서도 드러난다. 순창군에서도 주막업자들의 의병부대에 대한 협력은 마찬가지였다. 역시 주막업자로서 김동구 의병부대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김동구 의병이 12명의 병력을 이끌고 임실과 순창을 배회할 때 자신의 주막에서 술과 음식을 제공하였다. 1909년 (음)4월경에는 의병 탐문을 나온 경찰관의 조사에 대해 응하지 않고 의병부대의 동정을 숨겼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마을 부근에 있던 김동구 의병장에게 경찰관의 탐문 사실을 몰래 알려주어 도피를 돕기도 하였다. 한편 의병부대에 적극적인 협력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진술은 김동구 의병장의 부하인 김막동의 조사에도 참고되었다. 이를 통해 김막동과도 깊은 관계를 맺고 연락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적극적인 협력이 일제에 의해 간파되어 결국 붙잡혔고, 전주부(全州府)로 압송되어 심문을 당하였다. 이후 재판에 기소되어 1909년 10월 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도에 대한 지정은피죄’로 징역 3년을 받았다. 50세의 나이로서 옥중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1910년 2월 18일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구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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