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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구

全聖九

187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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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전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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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김제(金堤)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김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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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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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4) 전라북도 김제군(金堤郡) 출신이다. 1910년 판결 당시 나이는 36세이므로 1875년생으로 추정된다. 21세 때 경남 합천(陜川)으로 이주한 후 농업에 종사하였다. 1909년 의병단을 조직하고 합천·거창(居昌) 일대에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한일신협약으로 대한제국의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서울과 원주의 군인들의 무장봉기를 시작으로 정미의병(丁未義兵)의 항쟁이 전개되었다. 1909년 2월 15일 전성구는 경남 거창(居昌)·삼가(三嘉)·충북 보은(報恩) 등에 거주하는 김유준(金有俊)·김문점(金文點)·김재한(金在漢)·김상래(金尙來)·오낙삼(吳洛三)·변원화(卞元和)·최남수(崔南守)·전재관(全在寬)·심낙준(沈洛俊)·김화서(金化瑞)·송영수(宋永秀) 등과 함께 의병단을 조직하고, 부수령(副首領)으로 경남 합천과 거창 등지에서 활동을 벌였다. 일제는 이들을 고현리화적단(古縣里火賊團)이라고 지칭하기도 하였다. 1909년 3월 25일 밤 합천군 사상면(砂上面) 화양동(華陽洞)의 부호인 윤석우(尹錫佑)에게서 지폐 25원, 엽전 8관(貫)과 물품 수십 점, 옆집의 윤현수(尹鉉秀)로부터 엽전 8냥과 물품 수십 점 등을 징발하였다. 같은 해 5월 8일에는 삼가군 고현면(古縣面) 장기시장(場基市場)으로 정찰을 보낸 김유준(金有俊, 또는 김우준(金又俊)) 등 2명이 상인들에게 구류되자, 야간에 이들을 탈출시키는 과정에서 시장에 방화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6월 19일에는 합천 해인사(海印寺) 부근에서 박영래(朴永來)에게 물자를 징발하기도 하였다. 이 일로 동료 의병들은 체포되었으나, 홀로 민첩하게 은신해서 검거를 피할 수 있었다. 1910년 7월 29일 부산지방재판소 진주지부에서 열린 재판에서 동료 의병들이 사형 또는 15년형을 받을 때, 궐석(闕席) 상태에서 이른바 강도죄와 방화죄로 교수형을 받았다. 이후 약 24년간 지리산 기슭인 함양군(咸陽郡) 서상면(西上面) 사암리(沙岩里)에서 화전민으로 생활하였다. 그러다가 1934년 중순 연초전매령(煙草專賣令) 위반으로 붙잡혀 조사받던 중, 공소시효 만료 4년을 앞두고 과거의 행적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 사건을 보도한 『동아일보』의 기사에 따르면 1934년 10월 12일 공판에서 징역 7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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