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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만

全淳萬

1876 ~ 1932.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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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전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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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장단(長湍)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장단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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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황재호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경기도 장단군(長湍郡) 장도면(長道面) 고읍리(古邑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8년 당시 나이는 30세로, 1876년생으로 추정된다. 이 당시 거주지는 양주군(楊州郡) 이담면(伊淡面) 상봉암리(上鳳岩里) 철동으로 기록되어 있다. 활동 당시에는 음식 장사를 하고 있었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전순만(全順萬)을 썼다. 1907년부터 황재호(黃在浩) 의병부대에 들어가 활동하였다.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을 지시한 광무황제(고종)를 강제 퇴위시킨 일제는 한일신협약을 맺고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시키는 만행을 자행하였다. 이에 불복한 해산 군인들이 서울·원주 등지에서 봉기하여 일본군과 전투를 벌인 후 의병운동에 참여하였고, 의병항쟁은 의병전쟁의 형태로 고양되었다. 특히 경기도 양주(楊州) 등은 의병전쟁 초기 의병활동의 전초기지가 되었다. 황재호는 1907년 8월 대한제국 육군 참위로 복무하던 중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자 낙향하여 의병을 일으킨 후, 경기도 양주·파주(坡州)·가평(加平)·영평(永平) 일대에서 양주 출신인 추삼만(秋三萬)·정충환(鄭忠煥)·목자상(睦子商)을 포함하여 70~80명의 의병들을 이끌고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9월 30일 이후 황재호 의병부대에 참여하였고, 총기를 휴대하고 경기도 양주·적성(積城) 일대를 이동하면서 양식 등의 물품을 군수품으로 징발하였다. 이러한 항일활동을 펼치다가 붙잡혀 양주헌병분견소에서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08년 10월 8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유형(流刑) 5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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