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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운룡

全雲龍

1881. 1. 1 ~ 1919.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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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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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양주(楊州)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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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권득수 의병부대
  • · 윤인순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1881년 1월 1일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시북면(柴北面) 귀락(貴樂)에서 태어났다. 1907년 권득수(權得洙) 의병부대와 1909년 윤인순(尹仁順)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 등의 의병활동을 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을 강제하여 외교권을 침탈하고 이어서 통감부를 설치하고 정치적·경제적 침탈을 가속화하던 일제는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광무황제(고종)를 강제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맺어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해산하였다. 이에 국권회복을 위해 해산 군인이 참여한 후기의병은 크게 고양되어 의병전쟁의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이때 1907년 (음)7월 경기도 지평(砥平)·양근(楊根)·이천(利川)·양주에서 구국항전을 전개하던 권득수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집과 의병활동에 힘썼다. 이후 1908년 윤인순 의병부대로 소속을 옮겨 항쟁을 이어갔다. 윤인순은 파주·적성·양주 등지를 다니면서 일본군과 유격전을 전개하면서 일진회원 박순옥(朴舜玉)·이봉계(李鳳季) 등을 처단한 의병장이다. 당시 후기의병은 전국적이고 전계층적으로 대단위 집단의 투쟁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를 유지하기 위한 지역 주민들에게 군수 물자를 징발하였다. 이때 윤인순 의병부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벌이다가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1909년 5월 11일 경기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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