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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관

全在寬

187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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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전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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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창(居昌)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거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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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남상면(南上面) 월평리(月坪里)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875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은 전재홍(全在弘)이다. 1909년 2월 경남 합천군(陜川郡)에서 의병단을 조직한 뒤 합천군과 거창군(居昌郡)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1905년 일제가 을사조약을 강제하여 외교권을 침탈한 이후 국권회복을 위해 의병 활동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다. 1907년 8월 1일 군대 해산 이후부터는 해산 군인의 의병활동 참여로 인하여 항일 의병운동은 의병 전쟁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경남 지역의 경우 1908년 1월 13도 창의군의 활약, 그리고 일제의 강력한 탄압에 굴복하지 않고 김동신(金東臣) 등이 의병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거창군·삼가군(三嘉郡) 일대에서 활동하고 있던 심낙준(沈洛俊)·전성구(全聖九)·김화서(金化瑞)·김유준(金有俊)·김문점(金文點)·김재한(金在漢)·김상래(金尙來)·오낙삼(吳洛三)·변원화(卞元和)·최남수(崔南守)·송영수(宋永秀) 등과 함께 자체적으로 의병부대를 조직하였다. 1909년 3월 25일 합천군 사상면(砂上面) 화양동(華陽洞)을 거쳐, 5월 18일 삼가군 고현면(古縣面), 그리고 6월 18일에는 합천군 해인사(海印寺)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당시 후기의병의 경우 부대의 규모와 인원들을 유지하고 유격전의 형태로 일본군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군자금 모집 활동이 필수적이었다. 동지들과 함께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던 중 일본군에게 붙잡혔다. 1910년 7월 29일 부산지방재판소 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와 방화죄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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