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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오

鄭官五

1883. 11. 26 ~ 1921.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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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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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靈巖)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영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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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심남일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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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883년 11월 26일 전라남도 영암군(靈巖郡) 신북면(新北面) 유곡리(酉谷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한자를 달리한 정관오(鄭官午)와 정순룡(鄭淳龍)이다. 1907년 심남일(沈南一) 의병부대에 가입하여 호군장(犒軍將)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 일제는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광무황제(고종)를 강제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주권을 강탈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대한제국의 군대까지 강제로 해산시켜 이에 반발한 의병항쟁이 전국적 규모로 다시 전개되었다. 심남일 역시 이 시기에 봉기한 의병장 중 하나였다. 심남일은 전남 함평(咸平) 출신 유생으로, 1907년 11월 1일 기의(起義)하여, 이듬해 2월부터 함평·남평(南平)·보성(寶城)·장흥(長興) 일대에서 약 600명의 의병을 모집하였다. 이때 심남일 의병부대에 합류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심남일 의병부대는 1908년 3월부터 본격적인 항일투쟁을 전개하였으며, 이때 호군장에 임명되었다. 강진(康津)·능주(綾州)·해남(海南) 등지에서 일본군과 십여 차례 교전하였으며 여러 차례의 승리를 거두었다. 같은 해 10월 27일에는 의병장 심남일로부터 부대 지휘권을 위임받아 나주(羅州)에서 작전을 수행하였으며, 이듬해 3월부터는 전남 일대에서 여러 전투를 지휘하였다. 호군장으로서 활동을 지속하던 중, 1909년 8월 26일 일본군과 교전 끝에 붙잡혔다. 1910년 4월 4일 광주지방재판소에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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