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만춘
鄭萬春1879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장헌문(蔣憲文)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6)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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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6) 경상북도 장기군(長鬐郡) 내남면(內南面) 내곡(內谷) 출신이다. 기록에 따르면 1879년생으로 추정된다. 1908년 (음)2~4월경 경북 장기·경주(慶州) 등지에서 장헌문(蔣憲文)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하였다. 1894년 청일전쟁 이후 일제가 1904년 러일전쟁과 1905년 을사늑약을 계기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자 이에 항거한 의병 항쟁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여기에 1907년 군대해산으로 인해 해산된 병력이 의병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의병전쟁의 성격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경상 지역에서도 1908년 이후 본격적으로 의병 활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특히 1906년 5월 김재홍(金載弘)·김복선(金福善) 등과 함께 거의하여 영일(迎日)을 중심으로 경주(慶州)·죽장(竹長)·흥해(興海)·청하(淸河)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우며, 당시 경상도에서 가장 활발한 활동을 펼치던 신돌석(申乭石) 의병부대와 연합하였던 장헌문 의병부대에 가담하였다. 당시 대규모의 병력과 게릴라 전술을 하던 의병부대를 유지시키기 위해 주로 군자금 및 군수품 수집 활동을 벌였다. 장기·경주의 산간 각지에서 의병 활동을 활발히 하던 중, 1908년 5월 9일에 장기군 남면(南面) 공동(公洞)에서 장헌문 외 9명과 같이 붙잡혔다. 일본군에 붙잡힌 이후 1908년 10월 7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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