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해운
全海運1890. 10. 1 ~ 1951. 3. 21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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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0) 1890년 10월 1일 충청북도 음성군(陰城郡) 금왕면(金旺面) 사창리(社倉里)에서 태어났다. 이후 서울 안국동(安國洞)으로 이주하였다. 이명은 전해운(全海雲)이다. 1919년 11월 29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기 위하여 「독립공채조례(獨立公債條例)」와 「공채표발행규」·「공채모집위원규정」을 공포하였다. 독립공채 금액은 1,000원, 500원, 100원권 세 종류였고, 국내의 교통국과 연통제의 비밀조직을 통해 운영되었다. 공채모집위원으로는 도위원과 부·군위원을 두었는데, 도위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1921년 초에 임시정부에서 파견된 민정식(閔庭植)에게 독립공채 증서 100원권 3장을 전달받고,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였다. 1921년 4월경 공채증서·군자금영수증·사령서 등을 휴대하고, 안성군 서운면 산평리 민만식(閔晩植)을 만나 군자금 100원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5월 29일 서울 종로 소재 중국 요리점에서 이재근(李載根)·이영휘(李英輝)·박종성(朴鍾聲)·이영훈(李英薰)·이태운(李泰運) 등과 충북 음성·충주(忠州)·제천(堤川) 등지를 무대로 군자금을 모집에 대해 협의하다가, 경기도 경찰부 고등과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6월 9일 경성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이송되었다. 같은 해 8월 2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은 뒤 1922년 8월 24일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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