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寅贊
鄭寅贊1887. 12. 27 ~ 1932. 7. 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해동상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7년 12월 27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동래면(東萊面) 복천동(福泉洞, 현 부산광역시 동래구 복천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부산부 영도(影島)의 사립 옥성학교(玉成學校) 교사로 재직하며,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때 부산상업학교 졸업생인 이남식(李南植)을 지도하여 함께 만세운동을 계획하였다. 같은 해 8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경남 간부 및 간사장 도장을 새기고, 군자금 모집을 위해 부산·김해·밀양·양산 지역의 부호들에게 통고문을 우송하였다. 이후 김소룡·한덕술을 파견하여 군자금 모집을 지휘하였다. 또한 100주 합자회사인 해동상회(海東商會)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였다. 해동상회는 표면상으로는 위탁 판매업을 표방하였으나, 실제로는 독립운동 자금의 원활한 모집을 위해 조직된 회사였다. 이에 밀양 일대에서 주주모집을 권유하는 한편, 청년들이 독립운동에 냉담한 입장을 취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청년들이 결의할 것을 독려하였다. 이렇듯 교사라는 신분을 활용하여 학생·청년들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지도 및 지휘하는 활동을 전개하다가 붙잡혔다. 1920년 2월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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