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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在浩

鄭在浩

1891. 2. 7 ~ 1943.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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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鄭在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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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천(永川)임시정부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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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정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파리장서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91년 2월 7일 경상북도 영천군(永川郡) 임고면(臨阜面) 우항동(愚巷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정원일(鄭元日)이다. 1919년 유림계에서는 독자적인 형태로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서 독립에 대한 열망을 표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여기에 「독립불원서(獨立不願書)」에 유림대표로 김윤식(金允植)과 이용직(李容稙)이 있다는 잘못된 소문이 돌면서 이러한 주장은 더욱 힘을 받게 되었다. 결국 김창숙(金昌淑)·곽종석(郭鍾錫) 등을 중심으로 파리장서(巴里長書)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때 영남 유림 가운데 한 사람으로 137인의 유림과 함께 서명에 참여하였다. 이후 일제의 감시를 피해 만주로 망명하였다가 1920년 함경북도 지방에 돌아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연통제(聯通制)를 통해 활동을 하다가 붙잡혔다. 같은 해 법원에서 징역 2년을 받고 청진형무소 수감되었다. 풀려난 이후에는 다시 만주로 건너갔다. 1924년 만주에서 이탁(李沰)·오동진(吳東振)·현정경(玄正卿)·김이대(金履大)·지청천(池靑天) 등을 중심으로 정의부(正義府)가 만들어지자 여기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지속하였다. 1925년 (음)11월 이후에는 정의부 해원(海原) 검무관(檢務官)인 고인섭(高仁燮)과 함께 중국 해원 지방에서 활동하였다. 특히 정의부원 김정관(金正觀)·이춘산(李春山)·이희수(李喜洙)과 함께 펑톈(奉天)의 나경석(羅景錫)에게 군자금 200원을 받았고, 1926년 (음)7월 중순에는 개원현(開原縣) 전양목림자(前楊木林子)의 강사진(姜似振)의 집에서 일제 경찰의 밀정인 김재근(金在根)을 처단하였다. 이때 고인섭을 도와 각지에 군자금 모집을 독려하는 문서를 보내고 원활한 활동을 위해 각 지역의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러다 1927년 2월 12일 개원성(開原城)의 동문밖에 있는 서학생(徐學生)의 집에서 붙잡혔다. 1927년 11월 14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살인강도제령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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