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을생
田乙生1925. 12. 18 ~ 2004. 8.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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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1) 1925년 12월 18일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 옥천면(玉泉面) 문인리(文仁里)에서 태어났다. 형은 독립운동가 전기생(田己生)이다. 1941년 8월 전기생과 함께 중국으로 건너갔다. 전기생의 권유로 일본군 헌병대 하택분대(下澤分隊)의 견습통역관이 되었다. 당시 전기생은 산둥성(山東省) 조현(曹縣)에 있던 장제스(蔣介石)가 이끄는 중국 중앙군에 입대한 상태였다. 일본군 헌병대 통역관이 된 이후 일본군의 정세를 파악하여 전기생에게 전달하는 데 앞장섰다. 중국군 정보원이었던 중국인 왕씨(王氏)에게 일본군 부대의 이동, 무기 상황, 병력 현황 등의 정보를 전달하였다. 이것은 중국 중앙군 소속이었던 전기생에게 전해졌으며, 최종적으로 중국 중앙군의 중요한 정보로 활용되었다. 1943년 2월 일본군 상사가 중국 중앙군 병력 파악을 지시하자 300여 명 밖에 안 된다고 거짓 보고하였다. 당시 중국군의 규모는 1,500여 명에 달하였다. 결국 일제는 중국 중앙군과의 전투에서 패하였고, 친일 중국군 200여 명, 일본군 50여 명 등 총 35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었다. 1943년 10월 일제는 군의 합동작전을 통해 중국 중앙군을 공격하기로 하였다. 조현부대(曺縣部隊), 하택부대(下澤部隊), 호현부대(湖縣部隊)의 공격을 받은 중국 중앙군은 패배하였고, 많은 사람이 포로로 붙잡혔다. 신변의 위협을 느껴 부대를 탈출하였으며, 고향 정주로 비밀리에 잠입하였다. 이후 강준근(姜俊根)·백기헌(白基憲)·김인갑(金仁甲)·강영근(姜永根) 등과 함께 비밀결사 단체인 애국단(愛國團)을 조직하는 등 항일운동에 앞장섰다. 1945년 2월 정주군 옥천면(玉泉面)에 있던 일제 신사 및 시설물, 집기 등을 파괴하였다. 중국으로 피신하던 중 동료였던 김인갑의 밀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신의주로 압송되었다. 같은 해 7월 1일 이른바 ‘불경죄’로 징역 단기 1년 6월, 장기 3년을 받았고, 김천형무소(金泉刑務所)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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