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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덕봉

高德鳳

1904 ~ 1920.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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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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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인국민회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8) 활동 당시 거주지는 중국 지린성(吉林省) 룽징(龍井)이었다. 1920년 당시 17세였다고 하므로 1904년생으로 추정된다. 부친은 고경은(高景殷)이고 형제가 한 명 있었다. 3·1운동 당시 룽징에서 『대한독립신문(大韓獨立新聞)』을 배부하는 등 적극적인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국내에서 3·1운동이 시작되자 3월 7일 룽징에도 국내의 3·1운동 소식이 전해지고, 10일에는 룽징과 인접한 국자가(局子街)의 한인학교는 모두 휴교에 돌입한 후 독립선언과 만세 시위를 준비하였다. 이어서 13일 오후 수천 명의 한인이 참가한 가운데 만세 시위가 진행되어 13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많은 사람이 희생되었으나 독립에 대한 한인의 열기는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당시 룽징에 거주하는 교사를 포함한 많은 지식인과 독립운동가들은 3·1운동을 더 널리 알리고자 직접 신문을 발행하기도 하였다. 그중 『대한독립신문』은 대한인국민회장(大韓人國民會長) 구춘선(具春先)이 이익찬(李翼燦)·윤준희(尹駿熙)·방달성(方達成) 등과 함께 간행한 것으로 영국인이 운영하는 제창병원(濟昌病院) 지하실에서 비밀리에 등사판으로 인쇄하였다. 작은 판형 신문으로 1919년 6년 5일에 처음 발행된 이 신문은 일제의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배포되었다. 부친 고경은은 1921년 대한인국민회에서 박세호(朴世豪) 등과 함께 중앙교통국장(中央交通局長)을 맡고 있었다. 16세의 어린 학생으로서 일제의 감시망을 피하는 데 유리하였으므로 비밀리에 『대한독립신문』 배포 임무를 맡고 활동하였다. 신문의 내용은 대체로 국외에 거주하는 한인 동포에게 독립에 대한 열망을 전하는 기사와 일제의 잔혹한 만세 시위 진압, 각지의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상황 등이었다. 1920년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 이후 독립군에 앙심을 품은 일제는 간도 토벌을 명분으로 하여 대규모 토벌대를 보내 잔혹한 간도참변을 일으켰다. 구춘선 등은 독립군의 거점 이동과 함께 한인 학살을 피하기 위해 러시아 방면으로 이주하는 계획을 세웠다. 이에 맞춰 독립군을 따라 러시아까지 함께 이동하고자 하였으나 어린 나이였기에 가족의 반대에 부딪쳤다. 독립운동에 대한 열정을 보이고자 음독 자결을 택한 끝에 순국하고 말았다. 1920년 4월 9일 장례식을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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