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東善
趙東善1908. 6. 29 ~ 1957. 4. 12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농민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8년 6월 29일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고금면(古今面) 세동리(細洞里)에서 태어났다. 서울 경신학교(儆新學校)에서 수학하였다. 1929년 4월 경신학교 3학년 재학 중 악질적인 교사들을 배척하는 운동을 주도하다가 퇴학당하였다. 같은 해 일본 도쿄(東京)로 유학하여 리츠메이칸대학(立命館大學) 전문부 경제학과 야학부에 진학하였다. 신문 배달 등을 통해 학비와 생활비를 벌면서 고학하였으나, 학자금이 부족하여 학업을 마치지 못하였다. 1931년 11월 무렵 고향으로 돌아와 농업에 종사하였다. 12월 중순 완도군 군외면(郡外面) 황진리(黃津里) 이두성(李斗聲)의 집에서 황동윤(黃同允)을 비롯한 동지들과 함께 모여 완도군 내의 농민운동과 어민운동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방법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유력 인사들을 이 운동에 참여시키고 동지를 규합할 것을 결의하였다. 1932년 초 다시 이두성의 집에 모여 농민운동의 지도기관을 조직하고 운동 방법에 대해 논의하였다. 재차 유력한 동지를 획득하고 참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논의를 진행하였다. 같은 해 11월에는 김길룡(金吉龍) 등과 군외면 대야리(大也里)의 다리에 모여 완도 농민운동 지도기관 조직을 협의하였다. 이를 위해 각자의 마을에서 소작인과 어업조합원 등을 지도하여 소작쟁의나 어업조합 폐지운동을 일으키고자 하였다. 11월 20일 이두성의 집에 모여서 어업조합 반대운동을 일으키는 구체적 방법에 대해 논의하였다. 한편 1932년 9월 군외면 신학리(新鶴里) 소재 예배당에서 황상남(黃相南)과 함께 야학교를 개설하여 학생들에게 사회주의 학습을 시켜 독립의식을 고취하기로 하였다. 1933년 1월 10일 김신제(金信濟)와 함께 전라남도 해남군(海南郡) 북평면(北平面) 이진리(梨津里) 최상춘(崔相春)의 집에서 황동윤 등을 만나 완도와 해남에서 농민운동을 일으키기로 뜻을 모았다. 이후 농민운동과 어민운동을 지원하며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활동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36년 12월 28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미결구류일수 중 545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항기⋮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