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鄭樂鎭

鄭鎭

미상 ~ 1908. 4. 2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鄭樂鎭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미상의병

관련 단체

  • · 방인관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방인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5) 자료의 한계로 출신지와 출생일자 등은 알 수 없다. 방인관(方仁寬)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강원도 원주군(原州郡) 문막면(文幕面) 일대를 중심으로 소규모 분대를 이끌면서 의병활동을 전개하다 일본군의 총격에 희생되었다. 1905년 외교권이 박탈되고 1907년 7~8월에 대한제국 군대해산이 진행되어 일제의 침략야욕이 노골화되자, 전국적인 항일여론이 격화되고 의병 봉기가 발생하였다. 특히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의 경우 사전에 군대해산 소식을 입수하고 1907년 8월 5일 민긍호(閔肯鎬)·김덕제(金德濟) 등이 300여 명의 병사와 함께 봉기하였다. 그리고 일제 및 정부에 대한 불만이 상당했던 주민들과 합류해 무기고를 탈취하고 시가전을 전개하였다. 이후 이들은 원주 주변 지역으로 흩어져 의병부대를 형성하거나 혹은 합류하였다. 결국 원주진위대의 봉기로 인하여 원주지역 의병부대의 군사적 기반은 양적·질적으로 강화되었다. 평안도 출신인 방인관은 원주에서 거병한 이인영(李麟榮)의 호소를 받고 13도창의군에 합류하고자 80여 명의 동료와 함께 경기도 양주(楊州)로 이동하였다. 이후 이인영의 좌군장(左軍將)으로 활동하면서 경기도 동부의 음죽군(陰竹郡)·여주군(驪州郡)·강원도 원주군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이때 방인관 의병부대의 소규모 분대 지휘관으로서 원주군 문막면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한편, 일제 측은 신병(新兵)을 파견하여 원주 지역 진압 능력을 증대하고자 하였다. 그러던 중 1908년 4월 2일 원주수비대(原州守備隊)의 하나키(花木) 특무조장(特務曹長)은 서울에서 신병을 보충받고 원주로 귀대하던 중에 원주군 문막면 서남쪽의 신대촌(新垈村)에 수십 명의 의병부대가 주둔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하나키는 부하들을 인솔하여 척후를 잠입시켰으나, 의병부대 수십 명은 이를 탐지하고 황급히 후퇴하고자 하였다. 일본군은 즉시 추격하여 교전을 벌였고, 이에 부하들을 통솔하며 후퇴와 교전과정을 지휘하였다. 그러나 교전 중에 적이 쏜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구열회⋮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