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趙文紀

趙文紀

1927. 5. 19 ~ 2008. 2. 5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趙文紀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기 수원(水原)의열투쟁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수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애국청년당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대한애국청년당
  • · 부민관 폭파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927년 5월 19일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매송면(梅松面, 현 화성시 매송면) 야목리(野牧里)에서 조병길과 연안 이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매송면 원평리(院坪里)에 위치한 매송보통학교를 다니다가, 외가가 있는 용인군(龍仁郡) 양지면(陽智面) 양지리(陽智里)로 이사해 양지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42년 10월 일본으로 건너가 가나가와현(神奈川縣) 가와자키시(川崎市)에 있는 일본강관주식회사(日本鋼管株式會社)에 훈련공으로 강제수용되었다. 이곳에서 경기도 안성군(安城郡) 출신인 유만수(柳萬秀)를 만나 동지가 되었다. 그리고 한국인 노무자에 대한 멸시와 탄압이 극심한 상황을 겪으며, 유만수와 파업을 계획하였다. 1943년 5월 민족차별에 반대하는 한국인 노무자 1,000여 명이 3일 동안 시위를 일으키자, 동참한 후 이를 주도하였다. 이때 요코하마(橫濱) 헌병대·가와자키시 경찰 80여 명에 포위된 채 투쟁하다가, 유만수와 함께 지명수배를 피해 귀국하였다. 1945년 5월 서울 관수동(觀水洞) 유만수의 집에서 유만수·강윤국(康潤國)·권준(權俊)·우동학(禹東學) 등과 비밀결사 대한애국청년당(大韓愛國靑年黨)을 결성하고, 대일투쟁을 결의하였다. 이때 친일 민족반역자인 박춘금(朴春琴)이 대의당(大義黨)을 조직하고, ‘일제에 충성을 맹세하고 태평양전쟁에서 아시아민족의 전쟁 수행을 위한 대동단결을 강조하기 위하여’ 7월 24일 서울 부민관(府民館)에서 아세아민족분격대회를 개최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유만수 등과 함께 대회에 참석하는 일제 고위간부와 친일파들을 처단하기 위해 대회장인 부민관을 폭파하는 계획을 수립하였다. 대회 당일 동지 세 명과 대회장에 폭탄 두 개를 연단과 복도에 설치하였으나, 예정보다 빨리 폭발하여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대회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 일제에 대한 저항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이후 일제는 전국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현상금을 내걸었으나 범인 검거에 실패하였다. 의거 이후 조동필(趙東泌)·유태현(柳台鉉) 등과 매송면 노림리의 야학당(夜學黨)을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중 광복을 맞이하였고, 이후 거사의 주인공으로 밝혀졌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최보영⋮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