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권영규

權寧奎

미상 ~ 1922. 10. 14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권영규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미상만주방면

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관련 사건

  • · 대한독립단
  • · 광복군총영
  • · 대한통의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9) 생년월일 및 출신지는 확인할 수 없다. 1920년대 초 대한독립단, 대한통의부 등에서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4월 남만주의 류허현(柳河縣) 삼원포(三源浦) 대화사(大花斜)에서 망명 의병 계열 인사인 박장호(朴長浩)·조맹선(趙孟善) 등이 보약사·향약사·농무계 등의 한인 자치단체를 통합하여 결성한 단체다. 박장호를 도총재로 하는 중앙본부와 지부·지단의 지방조직을 두고 초기에는 세력 확장을 위해 단원 모집과 군자금 모집에 노력하였다. 1919년 말 만주와 국내에 많은 지단·지부를 설치하며 세력을 확대해 가던 대한독립단은 연호 사용 문제로 표면화한 이념적 지향의 차이로 분열되기 시작하였다. 단기(檀紀) 또는 대한제국 연호의 사용을 주장하는 복벽주의 세력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연호 사용을 주장하는 공화주의 세력 사이에 대립이 있었고, 이후 대한독립단은 복벽주의 세력의 기원독립단과 공화주의 세력의 민국독립단으로 양분되었다. 1920년 민국독립단의 일원이 되어 국내에 파견되어 친일 밀정 처단, 군자금 모집 등의 항일 활동을 하였다. 민국독립단은 1920년 8월 임시정부의 주도 아래 단둥(安東)의 대한청년단연합회, 국내의 의용단과 결합하여 대한광복군사령부를 결성하였다. 이에 불참한 기원독립단은 이후 대한독립단을 유지한 채 활동하였다. 민국독립단이 대한광복군사령부로 확대 재편되자 예하 부대의 지방 출동부대 대원이 되어 활동하였다. 1920년 10월 일제의 ‘간도 토벌’로 간도의 독립군단은 근거지를 잃고 흩어졌다가 점차 새로운 근거지를 마련하고 진영을 재정비하였다. 이후 간도에서는 소규모의 독립군으로는 일본군에 효율적으로 대항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효율적 항일전을 위한 독립군단의 통합 운동이 일어났다. 그 결과 1922년 봄 환런현(桓仁縣)에서 서간도의 항일 단체와 독립군단이 모여 대한통군부를 결성하였다. 대한통군부는 얼마 뒤인 그해 8월에 환런현 마권자(馬圈子)에서 남만한족통일회의를 열고 대한통군부의 결성 때 참여하지 않은 항일 단체와 독립군단을 포함하여 대한통의부를 결성하였다. 대한통의부의 부원이 되어 활동하다가 1922년 10월경 병으로 사망하였다. 그해 10월 15일 대한통의부 관톈남구(寬甸南區)지방 인민대표는 통의부 교섭부장 김승만(金承萬)의 사회로 순국의사추도회를 성대히 거행하였는데 이때 순국 의사의 한 분으로 함께 추도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