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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필

鄭大弼

1880. 5. 10 ~ 1938.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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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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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양(咸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함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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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거창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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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0년 5월 10일 경상남도 함양군(咸陽郡)에서 태어났다. 본적은 경남 거창군(居昌郡) 위천면(渭川面) 금곡(金谷)이다. 자는 사언(士彦), 호는 이우(二友), 본관은 초계(草溪)이며 확계(蠖溪) 정옥견(鄭玉堅)의 후손이다. 천성이 강직하고 총명했으며, 유생으로 평소 남자가 세상에 태어나서 효제충신(孝弟忠信)을 실행해야 한다는 유교적 도덕 논리에 투철하였다. 함양·거창지역에서 활동한 문태서(文泰瑞) 의병부대에서 많은 전과를 올렸던 정영필(鄭永弼)이 동생이다. 1908년 동생이 거창읍 가지리(可旨里) 뒷산에서 일본군과의 교전에서 사망하자, 이를 분개하며 평생의 한으로 생각하였다. 1919년 3월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거창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다만, 자료의 한계로 참가한 만세시위를 정확히 알 수 없다. 거창군에서는 3월 15일 거창면 만세시위 계획을 시작으로, 총 3번의 만세시위와 4번의 만세시위 계획이 있었다. 그 중 3월 22일 가서면(加西面)·가북면(加北面) 일대에서 거창 지역 유림들의 주도하에 만세운동이 거행되었다. 약 2,000명의 시위대가 거창헌병분대를 습격하며 격렬한 만세시위를 진행하였다. 4월 3일에는 위천면 남산리(南山里)에서 위천 장날을 계기로 만세시위를 계획하였으나 사전에 일제에게 계획이 발각되어 무산된 바 있다. 지역에서는 위천면 금곡마을에 거주하던 유희탁(劉希倬)과 함께 정수필(鄭洙弼)·유한탁(劉漢倬)·이형준(李衡俊) 등 지역유생을 규합하여 만세시위를 계획하였고 4월 8일 위천 장날에 만세시위를 진행하였다고 전한다. 5,000명에 달하는 시위대가 만세시위를 했다고 기억되고 있지만, 객관적 자료로 4월 8일 위천 장날에는 만세시위가 확인되지 않는다.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징역 3년을 받고 진주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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