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각배
金珏培1894. 10. 5 ~ 1965. 4. 17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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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4년 10월 5일 황해도 연백군(延白郡) 호동면(湖東面) 나진포리(羅津浦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기 하루 전인 2월 28일 예수교 측 인편으로 약 100장의 독립선언서가 연안읍 기독교회에 전달되자 김경태(金竟泰)·신현기(申鉉琦)·송창섭(宋昌燮) 등과 같이 해주 등지와 연락을 취하며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일제의 감시가 엄중한 가운데 각 면의 시위 책임자를 정하고 제1차 봉북면(鳳北面), 제2차 호동면, 제3차 호남면(湖南面) 식으로 만세 시위를 하기로 정하였다. 3월 15일 먼저 봉북면에서 김덕배(金德培) 등이 앞장서서 만세 시위를 벌이며 연안읍으로 향하였으나 일본 헌병대에 의해 무력 저지되었다. 이튿날인 3월 16일 계획에 따라서 호동면 나진포리에서 유원권(柳遠權)·백창만(白昌萬)과 함께 주민 60여 명을 이끌고 연안읍을 향해 행진하였고, 일본 헌병대의 저지를 뚫고 남문을 통해 읍내로 들어가 읍내 주민과 함께 만세를 부르며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만세 시위는 일본의 무력에 의해 강제해산되었고 동지 10여 명과 함께 붙잡혔다. 해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으나 ‘정의와 인도에서 민족의 자결을 주장하는 이 시기에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 무엇이 잘못이냐?’ 하며 따졌다. 판결에 불복하고 평양복심법원에 항소하였으나 5월 3일 기각되었다. 이에 다시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5월 31일 기각되어 징역 1년 6개월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인 1920년 5월경 정순경(鄭順敬)·편강렬(片康烈)의 권유를 받고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해주지단(海州支團)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대한독립단 해주지단은 1920년 음력 1월경 정순경이 국내에 대한독립단 지단 설치를 목적으로 파견된 대한독립단원 김기한(金基漢)을 만나 그해 3월경에 설치되었다.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발행한 『독립신문』을 전달받아 이를 배부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다가 그해 8월 7일 붙잡혔다. 1921년 7월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범처벌령 위반으로 심리를 받았으나, 정순경·편강렬이 항소 사실을 부인하여 면소 판결을 받고 석방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윤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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