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允參
鄭允1882. 6. 21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3)
관련 사건
- · 1919년 양주군 장흥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3) 1882년 6월 21일 평안남도 정주군(定州郡)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장흥면(長興面) 울대리(鬱垈里)로 이주하였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이회명(李會明)·김순갑(金順甲)·김완순(金完順) 등과 함께 1919년 3월 29일 양주군 장흥면 교현리(橋峴里)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장흥면에서는 면사무소가 위치한 교현리를 중심으로 3월 28일부터 29일까지 2일간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이 만세운동은 교현리의 이회명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회명은 3월 1일 이래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장흥면에서도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이회명은 3월 28일 저녁 8시경 교현리의 음식점 박소사(朴召史)의 집 앞에서 교현리 마을 주민 수십 명을 규합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는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한동안 만세시위를 진행한 후, 이회명은 ‘내일도 독립만세 시위를 위해 이곳에 모이자’라고 하며 이날의 만세시위를 정리하였다.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만세운동에 크게 공감하고 있던 중, 3월 28일 교현리의 만세시위 소식을 전해 듣고, 곧바로 김순갑·김완순과 함께 마을에서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3월 29일 아침 김순갑은 만세시위에서 사용할 태극기를 제작하고, 김완순과 함께 울대리와 부곡리(釜谷里)의 주민들에게 만세시위에 참여할 것을 호소하였다. 수십 명의 주민들이 이에 공감하여 참여하였다. 주민들을 규합하여 시위대열을 형성하고, 김순갑·김완순과 함께 선두에서 시위대를 지휘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장흥면 면사무소를 향해 행진하였다. 장흥면 면사무소 앞에 도착할 즈음에는 시위대의 규모가 3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잠시 후에는 이회명이 지휘하는 교현리의 시위대가 선두에 태극기를 앞세우고 면사무소 앞에 도착하였다. 교현리의 시위대와 하나가 되어 교현리의 곳곳을 행진하고, 면사무소 앞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는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만세시위 진압을 위해 출동한 일제 헌병들이 총기로 위협하자, 시위대는 이들의 총기를 탈취하려 시도하는 등 적극적으로 저항하였다. 이와 같은 격렬한 저항에 일제 헌병들은 시위대를 향해 실탄 사격으로 대응하여 현장에서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후 장흥면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이회명·김순갑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조사받은 후,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소하였지만, 그해 8월 14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이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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