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仁敎
鄭仁敎1888. 9. 20 ~ 1932. 1. 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2)
관련 사건
- · 1919년 김포군 월곶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2) 1888년 9월 20일 경기도 김포군(金浦郡) 월곶면(月串面) 조강리(祖江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어업에 종사하였다. 최우석(崔禹錫)·조남윤(趙南潤) 등과 함께 1919년 3월 28일 월곶면 조강리 함반산(含飯山) 횃불만세운동과 3월 29일 옛 통진(通津)읍내인 월곶면 군내리(郡內里)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김포군에서는 고양리(高陽里)의 성태영(成泰永), 군하리(郡下里)의 백일환(白日煥)·이살눔(李살눔), 고정리(高亭里)의 최우석 등의 주도로 3월 22일 최초의 만세운동이 일어난 이래 4월 5일까지 여러 차례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조남윤은 3월 29일 월곶면에서 새로운 만세시위를 조직하기 위해 3월 28일 당인표(唐寅杓)의 집에서 모임을 가졌다. 이때 당인표·최우석 등과 협의하여 ‘조선의 독립에 찬동하는 주민들은 내일 29일 오전 11시에 옛 통진 읍내에 집합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라’는 내용의 문서 7통을 작성한 후 면내 각 동리에 배포하였다. 이 격문을 보고 찬동하여 주민들을 규합하면서 자신의 고용인인 윤종근(尹鍾根)을 통해 “주민들에게 내일 29일 오전 11시경 옛 통진 읍내로 집합하여 독립만세를 외치도록 권유하고 오라”고 전달하게 하였다. 이에 윤종근은 마을주민들에게 이 내용을 알려 만세운동에 참여할 것을 권유하였다. 한편 3월 28일 밤 윤종근·민창식(閔昌植) 등을 비롯한 마을 주민들과 함께 독자적인 횃불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 날 밤 주민 수십 명을 규합하여 마을에 위치한 함반산(含飯山)으로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다음 날인 3월 29일에는 전날 횃불만세시위에 참여했던 주민들과 함께 군내리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날 오전 11시 조남윤이 전날 배포한 문서를 보고, 그 취지에 공감한 주민들 400여 명과 함께 옛 통진 읍내에 모였다. 조남윤의 지휘에 따라 만세시위에 참여한 주민들과 함께 통진향교(通津鄕校)와 면사무소 앞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일제 경찰이 무력으로 만세시위를 탄압하려 하자, 해산하지 않고 조남윤 등과 함께 남아있던 수십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전날에 이어 다시 함반산으로 올라가 횃불을 올리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횃불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6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한 결과, 같은 해 7월 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고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