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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在轍

鄭在轍

1893. 11. 26 ~ 1960.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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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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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금산(錦山)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금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1919년 금산군 복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6) 1893년 11월 26일 전라북도 금산군(錦山郡, 현 충청남도) 복수면(福壽面) 수영리(壽永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31일 금산군 복수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31일 금산군 복수면 수영리 주민들과 함께 부역으로 공사에 동원되어 도로를 수리하고 있었다. 휴식 중 대전 시장에서 목격했던 만세시위의 상황을 설명하며 이곳에서도 만세시위를 개시할 것을 촉구하였다. 먼저 독립만세를 부르자, 주민 김영호(金永浩)·오연구(吳然九) 등이 따라서 만세를 불렀다. 주민 유영준(兪英濬)은 시위가 일어나자 바로 참가하여 미리 만들어 둔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만세를 불렀다. 공사를 감독하던 일제 헌병이 제지해도 시위가 더욱 확산되자, 진산면(珍山面) 헌병주재소(憲兵駐在所)에서 헌병대가 파견되어 시위는 일시 중지되었다. 검거를 피한 시위 주도자들은 복수면 백암리(白岩里) 구장에게 통문을 보내 시위 참가를 촉구하는 한편, 3월 31일 밤 11시경 약 200명의 주민들을 모아 시위를 재개하였다. 시위대는 투옥자를 석방하라고 부르짖으며 행진해 금산군 진산(珍山) 읍내에 이르러 해산하였다. 일제 헌병대가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혔다. 1919년 4월 30일 전주지방법원 금산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석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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