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占用
鄭占用1897. 4. 30 ~ 1964. 11. 3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7)
관련 사건
- · 1919년 영덕군 영해면‧병곡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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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7) 1897년 4월 30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축산면(丑山面) 부곡동(釜谷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8일 영덕군 영해면 성내시장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성내시장 만세운동은 영덕군 내 북장로파 기독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계획되었다. 영덕군 지품면(知品面) 낙평동(洛坪洞) 예수교 북장로파 교회의 조사(助事) 김세영(金世榮)이 서울의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돌아왔다. 김세영은 영덕 지역에서도 만세운동을 벌일 계획을 세웠고, 기독교인을 중심으로 동지를 규합하고자 하였다. 여기에 권태원(權泰源)과 정규하(丁奎河)를 비롯하여 영덕군 내의 인물들이 찬성하여 모임을 가지고 각자의 뜻을 공유하였고, 역할을 나누어 운동을 전개할 것을 계획하였다. 만세시위 당일인 1919년 3월 18일 영해면 성내시장에 2,000여 명이 넘는 군중이 모여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고창하며 행진을 벌였다. 대규모의 시위대를 맞닥뜨린 주재소에서는 주임 순사가 시위 군중을 향하여 해산명령을 내렸으나, 시위대는 이를 거부하며 주재소를 공격하였다. 또한 일부 군중은 영해공립보통학교로 행진하여 학생들의 참여를 독려하였고, 영해면사무소와 영해공립심상소학교 등 여러 관공서가 군중의 공격을 받아 기물이 파손되고 공문서가 훼손되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한편, 영해면 성내시장에서 대규모 만세시위가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은 영덕경찰서장은 순사 4명을 데리고 영해면 주재소로 와서 시위 군중을 향하여 해산 명령을 하였다. 그러나 시위에 참여한 군중은 이에 응하지 않고, 일제 경찰서장 일행을 공격하고 추격하였다. 주인 남갑환 집의 제사로 인하여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던 중에 최태봉(崔泰奉)의 요청에 따라 백남이(白南伊)와 함께 나가서 일제 경찰서장 일행을 붙잡는데 가세하였다. 이에 따라 축산면 상원동(上元洞) 최수경(崔壽敬)의 집 부근에서 붙잡힌 서장 일행을 시위 군중과 함께 공격하여 전신에 상처를 입혔고 제복·제모·패검·총기 등이 손괴하였다. 1919년 7월 11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와 공무집행방해죄, 건조물손괴죄, 기물손괴죄, 공문서훼기죄, 상해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고, 그해 9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취소를 받았지만 형량은 동일하게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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