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宗鎬
鄭宗鎬1875. 6. 26 ~ 1961. 1. 3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파리장서 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75년 6월 26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청파면(靑波面) 수성동(水成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서원(西原, 현 충청북도 청주)이다. 자는 한조(漢朝), 호는 뇌헌(磊軒)이다. 아버지는 정재설(鄭在卨)이고, 어머니는 재령 이씨(載寧 李氏)이며, 부인은 광주 노씨(光州 盧氏)이다. 어려서는 중부(仲父) 정재기(鄭在夔)에게, 혼인한 이후에는 장인 노상익(盧相益)과 처숙(妻叔) 노상직(盧相稷)에게 학문을 배웠다. 45세 때인 1919년 유림들이 주축이 되어 추진한 파리장서(巴里長書) 운동에 참여하였다. 호서 지방의 유림 김복한(金福漢)과 영남 유림 곽종석(郭鍾錫)이 필두가 되어 호서와 영남 등지의 유림들을 규합하여 파리에서 열리는 강화회의에 보낼 파리장서를 작성하였다. 문서 작성에는 김복한·곽종석 이외에도 장석영(張錫英)·곽윤(郭奫)·김황(金榥) 등이 참여하였다. 파리장서에는 일제의 한국 주권 찬탈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이 담겨져 있었다. 이때 장석영으로부터 대구에 있는 윤상태(尹相泰)에게 장서를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자, 장석영의 집에서 옷 솔기에 문서를 넣고 솔기를 모두 꿰매어 감추고 비밀리에 윤상태에게 전달하였다. 파리장서는 김창숙이 상하이(上海)까지 가져간 이후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 대표로 파리에 있던 김규식(金奎植)에게 우편으로 보내 제출하기로 약속되었다. 그러나 파리장서 운동은 장서 서명자 중 한 사람인 송회근(宋晦根)이 성주 만세운동으로 체포되면서 사건의 형체가 드러나게 되었다. 관련자들이 연이어 체포되기 시작하였고 윤상태도 체포되자, 같은 해 7월 31일에 붙잡혔다. 1919년 10월 13일 대구지방법원 1심에서 파리장서 운동에 참여한 사실을 부인하였다고 하여 위증으로 징역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12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이후에는 산중에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하면서 제자 양성에 힘썼다. 유고집으로 『뇌헌문집(磊軒文集)』이 있으며,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이기변(理氣辨)」, 「격몽소편(擊蒙小編)」 등의 저작을 남겼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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