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鎭瑀
鄭鎭瑀1901. 8. 25 ~ 1967. 4. 1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홍성군 홍동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1년 8월 25일 서울 종로(鐘路) 체부동(體府洞)에서 태어났다. 서울과 충청남도 홍성(洪城)을 오가며 생활하였다. 1919년 당시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洪東面) 문당리(文堂里)에 거주하였고,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서울과 홍동면을 비밀리에 왕래하면서 각 지역 만세운동의 주요 인물들과 긴밀히 연락을 담당하였다. 4월 4일 홍성군 동북부 4개의 면에서 동시에 전개한 횃불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전까지 만세운동의 전개과정에서 주로 서울과 홍성의 주요 인물들 사이를 매개하고, 연락하는 역할을 하였다. 4월 초 홍성군 만세운동의 절정기에는 스스로 만세운동을 조직하였으며, 4월 4일 홍동면을 중심으로 구항면·금마면·홍북면까지 참여한 횃불만세시위를 조직하였다. 이 시위에는 4개 면의 24개 촌락이 참여하였다. 4월 4일 밤 만세운동에 공감하여 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홍동면 면사무소 앞에 모인 주민들을 규합하여 면사무소의 뒤편의 산 위로 올라갔다. 정상에서 횃불을 밝게 올리고, 일제히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홍성군 동북부 4개 면 24개 촌락에서 일제히 횃불을 올리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이에 일제 헌병대는 당황하다가 집중 발포함으로써 횃불만세운동을 하나씩 해산시켰다. 이러한 무력적인 진압 과정에서 다수의 사상자가 나왔다. 이후 일제 경찰과 헌병대가 횃불만세시위 참여자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와 색출작전을 실시하였지만, 곧바로 서울로 피신하여 검거를 면하였다. 이후에도 일제 경찰에게서 계속하여 지명수배를 받았다. 그러던 와중 이시영(李始榮)에게 국내의 독립운동자금 모집을 부탁받고, 1920년 (음)8월경 서울에 도착한 이규준을 만났다.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대한 임무를 전해 듣고, 이규준과 함께 홍성군의 거부에게서 자금을 마련할 계획을 세웠다. 이규준과 함께 은밀하게 홍성군 홍동면 구룡리(九龍里)에 거주하는 거부 김용대(金容大)에게 임시정부의 명의로 독립운동에 자금 2만원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김용대의 밀고로 1921년 2월 22일 홍성경찰서의 일제 경찰에 이규준과 함께 붙잡혔다. 조사과정에서 독립운동자금 모금과 함께 2년 전 만세운동 당시 홍동면의 횃불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 그로 인한 지명수배까지 파악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1921년 6월 15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함에 같은 해 7월 12일 제2심의 날짜가 확정되었으나, 돌연 항소를 취하하였다. 이에 징역 1년의 형량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