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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顯弼

鄭顯弼

1885. 1. 1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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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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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단천(端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단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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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1919년 단천군 파도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2) 1885년 1월 15일 함경남도 단천군(端川郡) 파도면(波道面) 동상리(東上里)에서 태어났다. 잡화상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0일 단천군 파도면 만세 시위에 참여하였다. 단천군에서는 3월 8일 단천군 천도교구장 염원형(廉元亨)이 주최한 회의가 열렸고, 여기에 안성교(安聖敎) 등 천도교 인사들이 참여하여 거사일을 교조 최제우의 순도기념일(殉道記念日)인 3월 10일로 결의하였다. 3월 10일 오전 11시 300여 명의 천도교 신자들이 단천군 천도교구실에 모인 가운데 염원형은 최제우 환원(還元) 기도회를 주재하였다. 기도회가 끝난 후 염원형은 천도교 신자들과 사람들에게 만세시위의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이어서 염원형을 필두로 안성교 등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시위대를 이끌고 만세시위를 전개하자, 여기에 참여하였다. 이때 시위대의 규모는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시위대의 일원으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행진하였다. 시위대와 함께 단천군 천도교구실을 출발해 읍내 시장을 거쳐서 남문으로 향하였다. 시위대가 읍내 주남리에 이르자 단천헌병분대 소속 일제 헌병들로부터 제지를 받았다. 일제 헌병대가 시위대의 진출을 차단하고 해산을 요구하자 설운룡 등이 결코 일제 헌병의 명령에 따르지 말고 대항하라고 외쳤다. 이에 따라 시위대와 함께 일제 헌병대의 해산 요구에 저항하였다. 일부 시위대는 막대를 휘둘르며 투석전을 전개하였다. 시위대 일부가 일제 헌병대에 돌진하여 무기를 탈취하려고 하자, 군도를 휘두르고 총기를 발포하며,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 과정에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23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3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며, 1919년 8월 1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다시 징역 2년을 받았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1919년 10월 1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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