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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浩宗

鄭浩宗

1901. 2. 9 ~ 1981. 9.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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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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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동래(東萊)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동래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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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동래군 사상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1년 2월 9일 경상남도 동래군(東萊郡) 사상면(沙上面) 감전동(甘田洞, 현 부산광역시 사상구 감전동)에서 태어났다. 동래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재학 중 1919년 3월 13일 동래군 사상면에서 전개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10일경 동래고등보통학교 졸업생으로 경성고등공업학교(京城高等工業學校)에 재학 중이었던 곽상훈(郭尙勳)이 내려와 동래고등보통학교 수학교사 이환(李環)에게 독립선언서를 비밀리에 전달하였으며, 동래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는 문제를 두고 상의하였다. 이에 곽상훈은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주도하는 만세시위 계획에 조언하는 역할로 참여하기로 하였다. 동래고등보통학교 만세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은 복천동(福泉洞)에 있던 엄진영(嚴進永) 집의 사랑채와 오종식(吳宗植) 집 사랑채, 그리고 수안동(壽安洞) 백정기(白正基)·고영건(高永建) 등의 하숙집을 돌아다니면서 만세시위를 구체적으로 계획하였다. 그 결과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은 3월 13일 오후 2시 동래 장날을 이용하며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3월 11일부터 13일 새벽까지 학생들은 이한주의 하숙방에서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만세시위를 주도한 학생들은 학교 등사판을 고영건의 방으로 옮긴 후, 그곳에서 엄진영 등과 함께 교대로 독립선언서 500장을 인쇄하였다. 다른 학생들은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를 인쇄하였으며, ‘대한국독립만세’라고 쓴 큰 기치와 ‘오왕약살(吾王藥殺)’이 적혀 있는 전단지도 만들었다. 3월 13일 오후 2시 엄진영(嚴進永)이 옛 군청 앞에서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면서 만세시위가 거행되었다. 동래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을 이끌면서 독립선언서와 전단지를 장날에 모인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고, 망미루(望美樓)와 동래읍성 남문(南門)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만세시위 소식을 들은 일제 군경이 시위 현장에 도착해 발포하면서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일제 군경에게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30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부산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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