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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光喆

趙光喆

1891. 10. 26 ~ 1951.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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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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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의주(義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의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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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06)

관련 사건

  • · 1919년 의주군 고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06) 1891년 10월 26일 평안북도 의주군(義州郡) 고성면(古城面) 대산동(台山洞)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17일 의주군 고성면 대산동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의주 일대의 만세시위는 3월 1일 의주 읍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시작으로 하여, 3월 2일과 3월 3일 의주 읍내에서 수천 여 명이 모인 가운데 전개되었고, 4일과 6일에도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만세시위가 이어졌다. 이후 만세운동은 주변 지역으로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3월 13일부터 3월 16일까지 신의주에 나와 있으며 이상과 같은 만세시위 상황을 전해 듣고,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고성면으로 돌아온 다음 날인 3월 17일, 인근 지역의 만세시위를 경계하고 있던 일제 헌병들이 고성면 주민들을 단속하기 위하여 대산동 교회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만세시위에 참여하지 말도록 주의를 주려고 하자, 이를 기회로 여기고 만세시위를 실행하였다. 오후 1시경 대산동 교회 공터에 기독교 신자는 물론 용문동(龍門洞), 가노동(可老洞), 대산동 일대의 주민 등 2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이자, 대산동의 서당 교사였던 이영수(李永秀)와 함께 앞장서서 독립만세를 고창하기 시작하였다.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자, 일제 헌병이 달려와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영수가 먼저 붙잡혔다. 이에 해산에 불응하는 한편, 이영수의 석방을 요구하면서 사람들을 이끌고 주재소까지 행진하다가 주도자로 일제 헌병에게 붙잡혔다.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아 항소하였다. 1919년 6월 5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을 받아 상고하였으나 7월 10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면서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윤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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