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秉順
曺秉順1911. 7. 10 ~ 1935. 4. 9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공산주의연구협의회
- · 흥산노동조합
- · 부여농민조합연합회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911년 7월 10일 충청남도 부여군(扶餘郡) 홍산면(鴻山面) 조현리(鳥峴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조병학(曺秉學)이다. 금강문인회(錦江文人會)를 결성하여 부여 지역에서 농민야학과 농촌 청년들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지도하였다. 1931년 홍산면에서 이호철(李戶喆)·노명우(盧命愚)·유기섭(柳基燮) 등과 함께 농민조합을 조직하여 사회주의 사상을 보급하고 독립운동을 펼치고자 하였으나, 일제 경찰의 단속이 심해지자 잠시 중단하였다. 이후 부여군 내 마정리(馬井里)·금송리(今松里)·조현리·장하리(長蝦里)·중정리(中井里) 등의 각 마을에 전영철(田泳哲)·강도형(姜道馨) 등의 동지들과 함께 야학을 개설하여 교육의 기회를 받지 못한 농민의 자녀들에게 한글과 산수 등의 교육을 실시하였다. 이와 함께 사회주의 토론회를 실시하여 항일투쟁을 이어나갔다. 같은 시기 이호철·노명우·유기섭 등과 함께 비밀결사 단체인 공산주의연구협의회(共産主義硏究協議會)를 조직하여 사회주의 실천 방법을 연구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33년 사회주의 실천 단체인 무산주의협의회(無産主義協議會)를 결성하고, 부여군 내의 농민들에게 사회주의 사상을 보급하여 독립사상을 고취시키는데 주력하였다. 그해 4월 홍산노동조합(鴻山勞動組合)을 개편하고 같은 해 5월 이호철·전영철·유병철(柳秉哲)·오기영(吳麒泳)·유인철(柳寅喆)·최재봉(崔在鳳) 등과 함께 충남공산주의협의회(忠南共產主義協議會)라는 명목으로 부여군 내의 홍산면 조현리, 규암면(窺岩面) 합송리(合松里), 남면(南面) 마정리, 장암면(場岩面) 장하리, 부여면(扶餘面) 중정리 등을 중심으로 하여 부여군의 노동자·농민층에 계급의식을 고조하는 등 지하운동을 실시하였다. 또한 각자 거주하는 지역의 지부조직 책임자로 활동하면서 비밀결사 단체인 부여농민구락부연합회(扶餘農民俱樂部聯合會)를 조직하였다. 같은 해 7월 7일 “사유재산을 부인하고 공산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부여농민조합연합회(扶餘農民組合聯合會)의 지부로 대야구락부(大也俱樂部)를 김임성(金壬成)·허원룡(許元龍) 등과 함께 부여군 홍산면 조현리 김영철의 집에서 위장하여 조직하며 독립운동에 힘썼다. 이러한 활동으로 펼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고, 1933년 10월 7일 공주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35년 3월 1일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옥고의 여독으로 그해 4월 9일 결국 사망하였다. 하지만 같은 해 1935년 4월 30일 체포된 동료들과 함께 공주지방법원의 재판에서 “대야구락부를 조직하여 대야농민학교의 학생감으로서 공산주의 실현으로 활동하였다”는 이유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을 적용받았으나, 사망으로 인해 공소가 기각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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