曺元甲
曺元甲1911. 7. 24 ~ 1936. 8. 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창원농민조합
- · 창원청년동맹 웅본지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0)
관련 사건
- · 웅천격문사건
- · 경남웅동적화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0) 1911년 7월 24일 경상남도 창원군(昌原郡) 웅동면(熊東面) 마천리(馬川里)에서 태어났다. 1930년 사립 계광학교(啓光學校) 교사로 재직하면서 웅천면(熊川面)에서 전개된 웅천격문사건에 참여하였다. 1930년 7월 21일 웅동면 소사리(所沙里) 서당에서 개최되 창원청년동맹(昌原靑年同盟) 웅본지부(熊本支部) 대회에서 임시의장으로 선출되어 의사를 진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배석한 일제 경찰과의 마찰로 집행위원장으로 선출된 조맹규(趙孟圭) 등과 함께 붙잡혀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같은 해 8월 29일 국치일을 앞두고 전날 밤 웅천 읍내에 독립정신을 고취하는 격문을 배포하였다. 이 웅천격문사건은 9월 2일부터 22일까지 모두 세 차례에 걸쳐 조맹규·최해도(崔海都)·이준도(李俊都)·박정환(李俊都)·김민배(金民培)·서도인(金民培) 등이 동참하여 진행되었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게 조사를 받고 9월 26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이후 마산형무소에서 약 11개월 동안 옥고를 겪다가 1931년 8월 16일 조맹규와 함께 풀려났다. 같은 해 9월과 11월에도 알 수 없는 이유로 일제 경찰에게 조사를 받았다. 1932년 4월 백태식(白太植)·이승종(李承綜) 등과 함께 창원농민조합 웅동지부를 조직하려는 준비하다가 진해경찰서 고등계 주임 이와타 경부보 등에게 붙잡혀 조사를 받고, 백태식 등 4명과 함께 마사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 1934년 10월 경남의 농민과 공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다가 진해경찰서에 농촌적화를 하였다는 이유로 붙잡혀 취조를 받았다. 이후 부산경찰서로 이송되어 약 6개월 동안 유치장에서 조사를 받았고, 결국 조맹규 등 4명과 함께 기소되었다. 1936년 5월 9일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부산지방법원에서 예심이 종결되고 재판에 회부되었지만, 장기간 취조와 옥고로 인해 얻은 병이 심해져 보석으로 풀려났다. 자택에서 3개월 동안 병고에 시달리다가, 그해 8월 8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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