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用參
鄭用1900. 7. 4 ~ 1922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 · 광복군사령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900년 7월 4일 평안북도 철산군(鐵山郡) 여한면(餘閑面) 무봉리(茂峰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철산군 여한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20년 광복군사령부(光復軍司令部)에서 활동하였다. 1919년 만세운동이 발생하자, 철산군에서는 3월 5일부터 차련관(車輦館)을 시작으로 여러 읍내까지 시위가 확산되었다. 3월 7일 만세시위에는 7명의 피살자까지 발생하였다. 당시 20세의 나이로 고향인 여한면에서 정용구(鄭龍九) 등과 함께 만세시위에 참가하였다. 이후 문봉서재(文峰書齋)를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4월 만주 류허헌(柳河縣) 삼원보(三源堡)에서 조직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이 평북 철산군에 지단을 설치할 때 참여하였다. 대한제국 시기 의병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대한독립단은 만주를 비롯하여 국내외를 넘나들며 친일파 처단, 일제 기관시설 파괴,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를 위해 평안·황해 등지에도 80여 개의 지단을 설립하여 활동범위를 넓히고자 하였다. 철산지단을 조직할 때 참여하여 조직 결성과 군자금 모집 등에 진력하였다. 이듬해인 1920년 2월 콴뎬현(寬甸縣)에서는 여러 독립운동단체의 주요 인사들이 모여서 독립운동세력을 규합할 수 있는 단체를 설립하고자 논의하였고, 같은 해 8월 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서간도에 광복군사령부를 설립하였다. 광복군사령부 군영 제6군영 영장(營將)이었던 김창곤(金昌坤)은 그해 7월경 정치민(鄭致敏)·정용구·형 김익곤(金益坤) 등과 철산 지역에서 광복군사령부 철산지부를 조직하고 일제 기관 파괴 활동 등을 전개하였다. 이때 지단 조직에 참여하였고, 군자금 모집과 독립운동사상의 선전에 진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이 발각되어 정용구 등 동료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21년 6월 1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 2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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