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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時海

鄭時海

1874. 5. 11 ~ 1906. 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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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鄭時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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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고창(高敞)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고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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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최익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관련 사건

  • · 중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0) 1874년 5월 11일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에서 아버지 정종택(鄭鍾澤)과 어머니 거창신씨(居昌愼氏)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자는 낙언(樂彦), 호는 일광(一狂)이다. 호남 유림 기우만(奇宇萬)과 최익현(崔益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906년 스승 최익현이 의병부대를 일으키자, 그 휘하에서 소모장 겸 중군장으로 활동하였다. 1905년 이른바 을사늑약이 체결된 것에 분개하여 최익현을 찾아갔다. 최익현으로부터 영남 일대의 지사들을 규합하여 창의를 준비하도록 부탁을 받고, 영남 각지의 지사들에게 최익현의 친서를 전달하며 동지를 모으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스스로를 ‘나라를 잃은 미친 백성’이란 뜻의 실국광민(失國狂民)이라 칭하고, 일광이라는 호를 지었다. 1906년 봄 최익현이 태인(泰仁)에서 의병부대를 일으키자 소모장 겸 중군장이 되어 병력 증강과 전투 지휘에 힘썼으며, 호남과 영남의 의병세력을 규합하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최익현의 의거 소식을 들고 각 지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같은 해 6월 의병부대의 규모는 800여 명에 달하였다. 6월 6일 태인에서 순창(淳昌) 구암사(龜巖寺)로 부대를 옮기고, 6월 8일 곡성(谷城)까지 진출하였다. 6월 11일 순창에서 관군·일본군과 전투 중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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