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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元執

鄭元執

1877 ~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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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鄭元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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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서울특별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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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정철하 의병부대
  • · 전해산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독립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95) 서울 중서(中署) 전동(磚洞)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7년 당시 31세이므로 1877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한 정원집(鄭元集)을 썼다. 대한제국 근위대 참위(參尉)로 복무하였다.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이후 정철하(鄭喆夏) 의병부대와 전해산(全海山) 의병부대에 참여해 선봉장으로서 여러 전투에 참전하여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7월 헤이그특사사건으로 고종이 강제로 퇴위당하고 이어서 대한제국 군대도 해산되었다. 같은 해 (음)9월 10일 이봉래(李鳳來)의 권유로 경기도 광주군(廣州郡)으로 가서 광주와 양평(楊平) 일대에서 활동하던 정철하 의병부대에 참가하였다. 9월 중순 정철하가 광주군에 사는 맹감역(孟監役)으로부터 군자금 2,000냥을 모집하는 것을 보고, 광주군과 용인군(龍仁郡) 일대에서 의병장과 함께 군자금 모집 활동을 수행하였다. 그러다가 이봉래와 함께 붙잡혀 경시청에서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그해 11월 30일 이른바 내란죄로 유형(流刑) 10년을 받고 전라남도 신안군(新安郡) 지도(智島)에서 고초를 겪었다. 1908년 6월 유배지인 지도를 탈출해 전해산 의병부대에 들어가 다시 의병활동에 투신하였다. 호남 지역의 대표적인 의병장인 전해산 의병부대에서 선봉장의 역할을 맡고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전해산이 공포한 「본 고을 반당(反黨)에게 보내는 격문」에 요즘 군의 형세가 차츰 떨치고 의로운 깃발이 날로 날리어, 김죽봉(金竹峰)·김치재(金痴齋)는 산 고을에 출입하고, 이순식(李淳植)·박도경(朴道京)은 바다 연변에서 연락하고, 신화천(愼華川)·조대천(曺大川)은 서북에서 경영하고, 심남일(沈南一)·안덕봉(安德峰)은 동남에서 치달리고, 나도 정원집(鄭元執)과 더불어 수십여 진을 규합하여 산과 바다로 횡행하고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의병부대에서 지휘관급 큰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1908년 8월 13일 전남 함평군(咸平郡) 일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유격전을 펼쳤다. 1909년 1월 말 부하들을 이끌고 전남 나주군(羅州郡) 고막원(古幕院)에 위치한 일본군 병참을 공격해, 일본군 5명을 처단하고 다수의 무기를 노획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전투과정에서 부하의 오발에 맞아 부상을 입고 귀대하였다가 끝내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노상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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