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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현

金洛賢

1884. 10. 2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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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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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창성(昌城)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창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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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한족회

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9) 1884년 10월 24일에 평안북도 창성군(昌城郡) 군내면(郡內面) 봉성리(鳳城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한자가 다른 김낙현(金洛鉉)이다. 성장한 뒤에는 서간도(西間島) 및 평북 지역에서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6월 10일 만주 지린성(吉林省) 지안현(輯安縣) 온화보(蘊和堡) 노령동(老岺洞), 노일령(老逸嶺), 지일잠(志逸岑) 등지에 거주할 당시 한족회에 가입하여, 지안현의 지방검찰관(地方檢察官)으로 재직하였다. 한족회는 3·1운동 이후 삼원보(三源堡)에 민족지도자들이 모여서 통일 조직 결성을 결의하고, 종래 자치기관이었던 부민단(扶民團)을 확대 개편하고, 군정부(軍政府)를 산하기관으로 설치하였다. 이후 수지구(受持區) 십리평(十里坪) 및 노일령(老逸嶺)에서 한족회 시찰(視察) 이화영(李化永)과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19년 10월에는 전기원(田基元) 등과 16명의 청년을 규합하여 한족회 결사대(決死隊)를 조직하였다. 1920년 6월 17일 한족회 검독(檢督) 장창현(張昌賢)과 도검찰(都檢察) 강명호(姜明浩) 등과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려고 국내에 잠입하여, 이튿날 오전 평북 강계군(江界郡) 문옥면(文玉面) 옥동(玉洞)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또 7월 5일 오후 문흥경찰서(文興警察署) 관내 삼강주재소(三江駐在所)를 습격하여 일제 경찰과 교전하였으며, 9월 6일경에는 강계군 문옥면 사무소 습격을 지휘하여 공금을 압수하고 서류를 불태웠고, 무기를 획득하고자 문옥면 경찰관 주재소를 습격하였다. 이후 강계군 만포진(滿浦鎭) 경찰서 소속 일제 경찰에 붙잡혀, 신문 과정에서 4개의 치아를 잃는 등 모진 고문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일제는 1919년 당시 강계군 문옥면에서의 군자금 모집 활동에 대한 거짓 자백을 받아내기도 하였다. 1921년 11월 14일 평양지방법원 신의주지청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으며, 평양복심법원에 항소하였다. 이후의 행적은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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