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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致三

丁致三

188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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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丁致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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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이천(利川)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이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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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정용대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5) 경기도 이천군(利川郡)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8년 당시 26세이므로 1888년생으로 추정된다. 1908년 정용대(鄭用大) 의병부대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으로 인해 대한제국 군대가 강제 해산을 당하였다. 이를 계기로 해산된 군인들이 민간 의병에 참여함으로써 의병활동은 의병전쟁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 여기에 개항 이후 지속적인 일제의 정치적·경제적 침탈과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인한 외교권 침탈, 화폐개혁의 강제적 실시 등은 경기·충청·강원 등지에서 국망의 위기 상황에 분개한 민간 차원의 의병활동이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정용대는 대한제국군의 특무정교(特務正校)였다가 1907년 군대해산을 계기로 스스로 창의좌군장(倡義左軍將)으로 칭하고, 수백 명의 의병을 통솔하여 적성(積城)·양주(楊州)·풍덕(豊德)·교하(交河)·통진(通津) 등에서 일군 등과 교전을 벌였던 인물이다. 1908년 (음)3월 정용대 의병부대에 참여하였고, 전투병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경기도 풍덕군(豐德郡) 조강리(造江里)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이어 교하군 분포동(汾浦洞)에서 양총 3자루와 탄환 20여 개를 탈취하여 수리하던 중 부상을 입었다. 통진군(通津郡)에서 부상을 치료하다가 결국 붙잡혔다. 1908년 7월 14일 평리원(平理院)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유형(流刑) 10년을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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