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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난섭

金蘭燮

189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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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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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은율(殷栗)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은율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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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독립단

포상 정보

  • · 독립장(199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독립장(1995) 1895년경 황해도 은율군(殷栗郡) 은율면(殷栗面) 홍문리(紅門里)에서 출생하였다. 1920년 8월 15일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 국내파견대인 구월산대(九月山隊)의 유격 활동을 지원해 대원들 못지않은 활동을 전개하였다. 대한독립단은 1919년 4월 15일 서간도 류허현(柳河縣) 삼원보(三源堡) 서구(西溝) 대화사(大花斜)에서 국내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했던 인사들을 중심으로 성립되었다. 성립 초기 중앙조직의 간부는 도총재(都總裁) 박장호(朴長浩), 부총재 백삼규(白三奎), 자의부장(咨議部長) 박치익(朴治翼), 사한장(司翰長) 김기한(金起漢), 참모장 윤덕배(尹德培), 총단장 조맹선(趙孟善), 총무부장 김평식(金平植), 재무부장 전덕원(全德元), 사법부장 이웅해(李雄海) 교통부장 양기하(梁基瑕), 선전부장 변창근(邊昌根) 등이었다. 대한독립단은 만주와 국내에 여러 지단을 설치하였는데, 중앙조직이 완성되고 약 8개월 만에 1백여 개의 지단과 지부가 만들어졌다. 국내 지단을 주도적으로 조직한 인물은 사한장인 김기한이었다. 그는 1919년 11월 황해도로 들어와 해주에 첫 국내 지단을 설치하였다. 황해도 지단 도통신(都通信)에 임명된 정순경(鄭順敬)은 이후 신천(信川)·연백(延白) 등 황해도 전 지역으로 지단을 확대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한독립단과 관계를 맺게 되었다. 대한독립단 군기감(軍機監) 이명서(李明瑞)는 국내파견대인 구월산대 대장에 임명되어 단원 7명을 인솔해 1920년 7월 류허현 본부를 출발하였다. 황해도 은율군까지 진입한 이들은 8월 초까지 지단원들에게 연락을 취해 유격대를 14명으로 증원하였다. 이명서는 공격 목표를 은율군의 친일 군수 최병혁(崔炳赫)과 친일파 고학윤(高學倫)으로 정한 후, 원활한 작전수행을 위해 인원을 4개조로 나누어 편성하였다. 최병혁을 기습할 이지표(李芝杓)·홍원택(洪元澤) 조, 고학윤을 습격할 김난섭·고두환(高斗煥)조, 최병혁과 고학윤 처단 시 기습조를 엄호할 대장 이명서가 이끄는 조, 작전을 끝내고 3개조가 철수할 때 이들을 엄호해줄 변춘식(邊春植)·박중서(朴重緖) 등의 조였다. 8월 15일 밤, 구월산대는 어둠을 이용해 각자 작전 지역에 배치되었다. 그리고 군수 최병혁의 집 공격조가 먼저 실행에 옮겨 작전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하지만 친일파 고학윤은 대원들의 침입을 눈치채고 도망가서 처단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 일로 마을이 소란해지자 주재소에서 일제 경찰들이 달려왔다. 이에 대장 이명서 조와 엄호의 임무를 맡은 변춘식·박중서 등의 조가 동시 사격을 가하였다. 소란이 일어난 곳을 향해 달리던 일제 경찰은 예기치 못한 곳에서 총알이 날아오자 당황해 도망가고 말았다. 작전 후 구월산대는 지단원들의 집을 옮겨가며 일제 경찰의 추적을 피하였다. 그러나 황해도 신천군 초리면(草里面) 노성우(盧聖祐) 집에서 다음 작전 계획을 짜던 중 일제 경찰의 공격을 받았다. 쌍방간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그러나 수적으로 우세한 일제 경찰의 공격을 당해낼 수 없어 대장 이명서 등 6명이 전사하고 많은 인원이 붙잡히고 말았다. 구월산대의 이 활동으로 체포된 인원은 39명이었고, 이 중 32명이 이른바 ‘범죄 및 범인 은닉’이란 죄명으로 재판을 받았다. 이때 다행히 일제 경찰의 추적을 피해 진남포에서 중국 선박 융극선(戎克船)을 타고 상하이(上海)로 갔다.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인사의 주선으로 무관학교에 입학해 본격적인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무관학교 졸업 후 임시정부와 연결되어 있는 독립운동 단체에 단원으로 가입한 뒤 1921년 중반 국내로 잠입하였다. 그리고 송화군과 은율군 등을 왕래하며 이창실(李昌實)·최준혁(崔俊赫)·홍돈기(洪敦基)·임승호(任承鎬)·박경근(朴璟根)·김형규(金亨奎) 등을 동지로 만들었다. 이들과 함께 분산되어 황해도 전역을 돌며 주민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고 독립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는 활동을 펼쳤다. 구월산대 활동과 같은 치열한 유격전을 또다시 전개하기 위한 바탕을 마련하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그해 9월 1일 은율군 은율면 풍산리(楓山里) 동지의 집에서 이창실과 함께 머물다 장연(長連)경찰대의 공격을 받고 전투를 벌이다가 붙잡혔다.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1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었다. 이후 행적은 확인할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채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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