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弘基
鄭弘基1887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유지명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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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5) 전라북도 옥구군(沃溝郡) 군산면(群山面) 장재동(長財洞)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9년 당시 나이가 22세이므로 1887년생으로 추정된다. 직업은 목면상이다. 1907년 8월부터 유지명(柳志明) 의병부대에서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일제는 헤이그특사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이어서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한 후 대한제국 군대마저 해산시켰다. 이러한 일제의 국권침탈 행위에 분노하여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다시 의병들이 일어났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지명 의병장의 휘하에 들어가 전북 고산군(高山郡)·용담군(龍潭郡)·전주군(全州郡)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과 일본 공관 등을 습격하는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특히 1907년 12월에는 유지명 의병장의 지휘에 따라 고산군 읍내 시장의 민가와 관아 부속건물, 세무서와 예배당 등을 불태웠다. 1909년 6월에는 전주군 소양면(所陽面) 반곡리(半谷里)에 위치한 오성보(吳成甫)의 제지공장에서 백지 7축(築)을 군수품으로 징발하였다. 이어서 같은 날 밤 소양면 삼중리(三中里)의 정사중(鄭士仲)으로부터 의병활동에 사용할 탄환제작 비용으로 엽전 500문을 모집하였다. 이러한 의병활동을 지속하다가 붙잡혀 일제 경찰에게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09년 7월 19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방화죄와 강도죄로 징역 15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여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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