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趙錫祐

趙錫祐

1864. 4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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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趙錫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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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운봉(雲峯)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운봉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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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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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0) 전라북도 운봉군(雲峯郡, 현 남원시 운봉읍) 군동면(郡東面) 청학동(靑鶴洞)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09년 당시 46세이므로 1864년생으로 추정된다. 1909년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에서 총대장으로 추대된 후 항일투쟁을 계획하고, 군사와 식량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8월 23일 영동군 양내면(陽內面) 영국사(寧國寺)에서 지역 사족(士族)인 장군선(張君先)·조덕장(趙德章)·권덕원(權德元) 등과 모임을 가진 후, 총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이어서 스스로 삼남대장(三南大將)이라 칭하고, 장군선·조덕장·권덕원을 부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한국의 독립을 위해서 국내에 거주하는 일본인과 일본인을 돕는 한국인 모두를 처단할 것과 철도 정거장 등 일제의 침략 거점을 파괴하기로 계획하였다. 또한 이를 실행하기 위해 격문을 작성해 돌리고 장정을 모집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다음날인 8월 24일부터 양남면(陽南面) 일대를 중심으로 군사와 식량 등을 모집하면서, 이를 피해 도망친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다소 과격한 군사 모병과 식량 모집으로 인해 주민들이 반발하였다. 결국 이러한 내용이 마을 이장을 통해 주재소로 보고되었고, 출동한 일제 경찰에게 동료들과 함께 붙잡혀 조사를 받고 재판에 넘겨졌다. 1909년 9월 23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유(流) 종신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며 항소하였고, 같은 해 11월 15일 경성공소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며 다시 종신 징역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배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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