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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範淳

朱範淳

미상 ~ 1907.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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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朱範淳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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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의병

관련 단체

  • · 이강년 의병부대

포상 정보

  • · 애국장(2001)

관련 사건

  • · 후기의병(이강년 의병부대)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1) 자료의 한계로 출생시기와 출신지 등은 알 수 없다. 1907년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다. 이강년 의병장은 유인석(柳麟錫) 휘하에서 활동하다가 1907년 4월 충북 제천(堤川)에서 의병부대를 일으켰다. 이 무렵 이강년 의병부대에 합류하였으며, 중군장(中軍將) 김상태(金尙台) 휘하에서 종사(從事)로 활동하였다. 그해 11월 25일 이강년 의병부대 소속으로 영춘(永春) 부근에서 주둔하던 중, 일본군이 동면(東面) 점촌(店村)에서 의풍(義豊)으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듣고 매복작전을 준비하였다. 의병장 이강년은 우선 좌군장인 이세영(李世榮)에게 6초(哨)의 병사로 남북진(南北津)을 파수하도록 하고, 좌·우선봉장에게 80명의 병사를 주어 율치(栗峙)에서, 중군장 김성태에게 5초의 병사를 이끌고 백자동(栢子洞)에서 각각 매복하도록 하였다. 이때 김성태와 함께 백자동에서 매복한 후 일본군을 기다렸다. 같은 해 11월 26일 영천(永川)에서 영춘으로 넘어오던 일본군은 정찰대 10명을 보내 이강년 의병부대의 복병을 파악하고 본진을 산 위로 보낸 뒤 의병들을 유인하여 위에서 아래로 기총사격을 하였다. 이러한 일본군의 유인작전에 말려들어 이강년 의병부대에서 6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이때 백자동에서 함께 매복하고 있었던 정겸동(鄭傔童) 및 포군 1명과 함께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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