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昌鎬
趙昌鎬1881. 10. 9 ~ 1936. 5.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독립장(1963)
관련 사건
- · 이완용
- · 이용구 처단 의거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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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장(1963) 1881년 10월 9일 평안남도 평양부(平壤府) 대찰리(大察里)에서 태어났다. 일제 기록에는 생년월일이 1882년 5월 1일로 기록되어 있다. 이명은 이제선(李濟善)이다. 1909년 이완용(李完用)·이용구(李龍九) 처단 의거에 참여하였다.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동문외중가(東門外中街)에 거주하였다. 1907년 재미 한인독립운동단체인 공립협회(共立協會)에서는 매국노 처단 계획을 세우고 이재명(李在明)을 파견하였다. 평양 출신으로 미국 하와이에서 노동을 하다가 그해 10월 귀국한 이재명이 평양에서 거사에 동참할 동지를 규합할 때 합류하였다. 이후 이재명·김정익(金貞益)이 서울과 평양 등을 오가면서 규합한 이동수(李東秀)·김병록(金丙錄)·전태선(全泰善)·이응삼(李應三)·오복원(吳復元)·박태은(朴泰殷)·김용문(金龍文) 등과 함께 이완용·이용구 처단 의거에 가담하였다. 1909년 12월 4일 일진회의 「합방성명서」가 발표되자, 12월 6일 박태은의 집에서 이재명 등과 만나 다시 매국적 처단을 논의하였다. 12월 7일 밤 이재명의 처가인 평양부 능덕면(陵德面) 구리(九里) 오소사(吳召史)의 집에서 모여 김정익과 이용구 처단을 담당하고, 다른 한 팀은 이재명이 주도해 이동수·김병록과 이완용을 처단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전태선과 함께 거사에 사용할 권총·단도 등을 마련하기로 하였다. 12월 12일경 이재명·전태선 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 김정익과 연락하면서 이용구 처단 시기를 엿보며 준비에 착수하였다. 12월 17일경 이재명의 숙소에서 마지막 모임을 갖고 이완용을 먼저 처단한 뒤 이용구를 처단하기로 결정하고, 무기 분배를 마친 다음 김용문(金龍文)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12월 22일 오전 김용문으로부터 이완용이 종현(鍾峴) 천주교당(현 명동성당)에서 벨기에 황제 레오폴트 2세의 추도식에 참석한다는 통지를 받고, 다른 동지들과 함께 거사를 실행하기 위해 이동하였다. 이재명·김병록·이동수 등이 먼저 천주교회당 앞에서 이완용 처단 의거를 감행하였다. 이완용에게 중상을 입힌 이재명만 호위하던 일제 순사에게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나머지는 피신하였다. 이후 이용구 처단을 맡았던 대부분이 연루자로 체포되었으나, 검거를 피해 해외로 나갔다. 궐석으로 재판에 회부되어 1910년 4월 13일 경성재판소에서 징역 15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강영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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