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甲洙
甲洙1894. 9. 3 ~ 1938. 8. 16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 · 베를린 유덕고려학우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3)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3) 1894년 9월 3일 충청남도 서천군(舒川郡) 한산면(韓山面) 종지리(種芝里)에서 김영성(金永聲)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과는 동향이자 친구인 월남 이상재(李商在)가 발의하고 부친이 사재를 출연해 향리에 설립한 진신학교(進新學校)에 들어가 신식 교육을 접하였다. 진신학교는 신학문을 가르치는 초등 과정의 학교였다. 14세가 되던 1907년 서울에 올라와 경신학교(儆新學校)에 들어가 공부한 후, 고향 친구인 김가전(金嘉全)의 소개로 김인전(金仁全) 목사가 충남 서천군 화양면에 설립한 한영학교(韓英學校)에서 약 1년 동안 영어와 수학을 가르쳤다. 김인전은 김가전의 백형으로, 후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각료로 활동하였다. 이때의 인연으로 김인전의 사촌 여동생과 혼인을 맺었다. 그 후 이상재의 주선으로 YMCA 영어학교에서 수학하였는데, 서울에서 생활하는 7년간 이상재의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였다. 1915년 YMCA 영어학교를 마치고 중국 상하이(上海)로 유학을 떠났다. 일본 유학을 포기하고 중국을 택한 것은 김인전과 이상재 등에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상하이 ‘독립 난양대학(南陽大學)’에서 수학하면서 타고난 재능을 살려 체육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축구·농구·야구 등 구기 종목에 능하고, 축구에서는 전 중국의 대표 선수로 선발되어 여운형(呂運亨)이 이끄는 필리핀 원정 경기에도 참가할 정도로 뛰어났다. 1918년 난양대학을 졸업하고 활로를 모색하다가 이듬해 4월 중국 상하이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우선 임시정부가 조직한 대한적십자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1919년 11월 발족한 ‘대한적십자회 회원대모집 경쟁회’에 참여하였다. 경쟁회는 회원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기 위해 상하이에서 활동·거주하는 적십자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모집위원을 4대(隊)로 나누고 대장 1인과 약간 명이 소속 위원을 편성하였다. 이때 십자대(十字隊, 대장 차관호) 소속 대원으로 활약하였다. 1920년 3월 25일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회의에 출석하여 신도(新到) 의원 자격심사에서 통과되었다는 통지를 받고 충청도 의원으로 임시의정원 의원의 직무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3월경 동향 출신의 유정근(兪政根)·조동호(趙東祜) 등과 함께 3월 18일 개회한 임시의정원 회의에 출석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정인과(鄭仁果)·현순(玄楯)·최근우(崔謹愚)·안현경(安玄卿)·박선(朴宣)·이한근(李漢根)·계봉우(桂奉瑀) 등과 함께 사면 청원이 정식 수리되어 의원직에서 물러났다. 이 무렵 임시정부가 발행한 국채를 지니고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국내에 잠입하여 전라북도에서 자금 모집 활동을 벌였다. 이때 임피(臨陂)의 갑부 이인식(李仁植)이 국채 1만 원 어치(100석)를 매입함으로써 임시정부 재정에 적지 않은 보탬이 되었다고 한다. 1920년 하반기에 임시정부에서 추천한 15명의 청년들과 함께 프랑스를 경유하여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1921년 파리의 일본 영사관 당국은 “작년(1920년) 일단 상해에 와서 동지에서 다시 불란서 방면으로 전항(轉航)한 자로서 판명되는 자”로 ‘김갑수 외 15명’을 조사하여 본국에 보고하였다. 이때 상하이를 떠나 프랑스 파리에 도착할 때까지의 여정을 기록하여 국내의 『조선일보』에 보내자, 『조선일보』는 3회에 걸쳐 기행문을 연재하였다. 당시 『조선일보』 사장은 이상재였다. 그 후 『동아일보』에도 「맺힌 꿈」이라는 독일 유학 여정을 담은 기행문이 실렸다. 독일 베를린(伯林)에서 뷔이즈버그대학의 물리학과에 재학 중인 1921년 1월, 10여 명의 한국인 유학생이 ‘유덕고려학우회(留德高麗學友會)’을 조직하였는데, 사진과 함께 동정이 『동아일보』에 보도됨으로써 이들의 활약상이 국내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유학을 마친 후 귀국하여 1927년부터 1938년까지 전북 완주군(完州郡) 봉동면에 설립된 봉상산업조합(鳳翔産業組合)의 이사로 재직하였다. 봉상산업조합은 전북 삼례와 봉동 일대의 부호인 윤건중(尹建重)이 독일 뮌헨대학 농업경제학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세운 것이다. 윤건중은 중국 상하이에서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함께 활동하였고, 독일 유학도 같이 떠났던 동향의 친구였다. 이 조합은 지역의 특산물인 생강을 재배·생산하여 판매까지 하는 ‘생강조합’으로 이면에서 ‘민족자본의 육성’을 꾀하였다고 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유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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