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晩埴
趙晩埴1886. 8. 10 ~ 1931. 8. 1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 · 불변단
- · 공화단
- · 암살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1) 1886년 8월 10일 평안남도 평양부(平陽府) 상수리(上需里)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춘삼(金春三)이며, 이명은 조선홍(趙宣弘)과 한자가 다른 조만식(趙晩植)이다. 1908년 보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대구재판소와 평양재판소에서 서기로 근무하다가 1915년 퇴직하였다. 1910년 이후 장로교회인 석교(石橋)예배당에 다녔다. 이후 광산업을 하다가 만주로 망명하였고, 1918년 이후 상하이(上海)로 건너가 1919년 4월 18일 톈진(天津)에서 명제세(明濟世)·김철(金澈) 등과 프랑스 조계 집실리(集實里) 36호 2층에서 불변단(不變團)을 조직하였다. 그해 6월 1일 불변단의 조직과 구성원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고하고 임시정부의 비밀 외곽단체로 승인받았다. 이후 톈진과 베이징(北京)에 거주하는 동포들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았다. 1919년 말 불변단을 중심으로 국내에서 제2차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특파원으로 안둥현(安東縣)을 거쳐 서울로 들어왔다. 이후 만세운동을 준비하기 위해 10월 30일 민강(閔橿)을 통해 윤종석(尹鍾奭)·전필순(全弼淳)·유경근(劉景根) 등과 접촉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에 행적이 발각되어 이해 10월 31일 윤종석이 체포되었고, 11월 7일 전필순과 붙잡혔다가 풀려났다. 같은 해 (음)11월 서울에서 임시정부와 연락을 위해 공화단(共和團)이란 단체를 조직하였고, 다시 상하이로 건너가서 1920년 2월 안창호(安昌浩)·윤현진(尹顯振)·김철 등과 공화단 운영에 대해 협의하였다. 3·1운동 1주년을 기념하여 만세를 부르고 독립선언서를 배부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2월 중순 국내로 들어와 3월 1일 용산역 앞에서 만세운동을 준비하였지만, 상하이에서 보낸 인쇄물이 일제 관헌에 압수당하면서 만세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후 명제세·최영만(崔英漫)과 임시정부가 발행한 공채증권을 통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려 하였다. 1920년 5〜6월 박승빈(朴勝彬) 등에게 서신을 보내고, 이돈구(李敦九)를 통해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였다. 또 김교석(金敎奭)에게 암살단 취의서를 인쇄하도록 하였다. 그해 8월 김상옥(金相玉)이 미국의원단의 입국을 기회로 조선총독부 고위관료를 암살하려다가 실패한 사건에 연루되어 9월 10일 붙잡혔다. 1921년 11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등으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후 다시 상하이로 망명하였으며, 1925년 4월 보천교(普天敎) 신도가 되었다. 이후 정의부 간부 이진산(李震山)과 협력하여 특파원으로 보천교를 통해 남부지방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권총과 폭탄을 가지고 국내에 잠입하다가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8년에 풀려나 다시 만주 안둥현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1931년 8월 15일 병으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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