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鄭鍾樂

鄭鍾

1890. 5. 17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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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鄭鍾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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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장단(長湍)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장단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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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7)

관련 사건

  • · 1919년 장단군 진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7) 1890년 5월 17일 경기도 장단군(長湍郡, 현 북한 개성직할시) 진남면(津南面, 현 파주시 장단면) 동장리(東場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3월 26일 장단군 진남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이래로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이창영(李昶永)·강규수(姜奎秀)·한기동(韓基東)·정순만(鄭順萬)·백태산(白泰山)·조진행(趙秦行)·이성구(李聲九)·양재영(梁在瑛) 등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3월 26일 밤 이창영·강규수 등과 함께 동장리에 위치한 사립 성화학교(聖化學校) 뒤에서 100여 명의 주민들을 규합하여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조선독립만세’ 구호를 일제히 외치면서 분위기가 오른 시위대에게 이창영은 ‘만세만 불러봐야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지금부터 진남면 면사무소로 가자’고 제의하였다. 이에 시위대 전체가 동의하여 이창영·강규수·한기동·정순만을 선두로 하여, 이들의 지휘에 따라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그러나 시위대가 면사무소에 도착했을 때는 면장 이하 면사무소의 직원들이 도주한 후여서 아무도 없었다. 이에 분노한 이창영과 강규수는 큰 소리로 ‘면장을 죽이라. 면사무소를 부숴라’고 외쳤다. 이창영이 솔선하여 가지고 있던 곤봉으로 면사무소의 장지문을 쳐서 그 유리 파괴한 것을 시작으로 강규수·한기동·정순만 등이 면사무소를 향하여 돌을 던졌다. 이에 백태산·조진행·이성구·양재영 등 다른 주민들과 함께 면사무소를 향하여 돌을 던져 면사무소의 현관 입구 좌측의 유리문과 문등(門燈)의 유리 등을 파괴하는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6월 2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5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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