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曺公贊

曺公贊

1880. 1. 7 ~ 1962.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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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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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광주(光州)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광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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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광주군 광주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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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8) 1880년 1월 7일 전라남도 광주군(光州郡) 광주면(光州面) 북문(北門)에서 태어났다. 창씨명은 창산공찬(昌山公贊)이다. 1919년 3월 10일 광주군 광주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광주군 만세운동은 도쿄(東京) 유학생 정광호(鄭光好)가 귀국 후 광주군 청년들에게 2·8 독립선언서 낭독 사실을 알려주며 시작되었다. 최한영(崔漢泳)·김복수(金福洙) 등이 2·8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한편, 고종 인산에 참여한 김철(金鐵)과 서울에서 유학 중이었던 최정두(崔正斗)가 광주군으로 귀향하였다. 최한영 등은 양림동에 위치한 남궁혁(南宮赫)의 집에서 김강(金剛)·최병준·황상호(黃尙鎬)·강석봉(姜錫奉)·한길상(韓吉祥)·최영균(崔瑛均)·김용규(金容奎)·서정희(徐廷禧)·김태열(金泰烈) 등과 회합을 가졌다. 김철과 최정두가 서울의 만세시위 소식을 알려주자 그 모임에 참여한 인사들은 광주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최한영·최정두·한길상·김용규·범윤두(范潤斗)는 독립선언서, 태극기, 격문, 애국가, 독립가 등을 제작하였다. 아울러 광주면에서 소규모 장터가 서는 3월 10일에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당일인 3월 10일 오후 3시 무렵 부동교 일대에서 시작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이날 만세시위는 개신교인, 숭일학교, 수피아여학교, 농업학교 등에 재학 중인 학생, 동네 주민 1,000여 명이 참여하였다. 만세시위를 주도한 인사들은 사람들에게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나누어주었으며, 대형 태극기를 들고 만세시위를 시작하였다. 시위대의 일원으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행진하였다. 일제 군경은 시위대의 기세에 눌려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시위대가 경찰서 앞에 이르자 시위를 주도한 김철을 비롯한 인사들을 연행하였다. 분노한 시위대와 함께 경찰서로 진입하면서 연행된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일제 군경은 소방대원까지 시위 현장에 투입되었다. 일제 군경에 의해서 광주 만세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30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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