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曹圭鶴

曹圭鶴

1886. 1. 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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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曹圭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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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槐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괴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7)

관련 사건

  • · 1919년 대성리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7) 1886년 1월 6일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 장연면(長延面) 대성리(台城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조규민(曺圭敏)이다. 고향에서 요식업에 종사하였다. 1919년 4월 2일의 대성리 횃불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1일 서울을 중심으로 독립선언식을 개최하여 나라의 독립을 선언한 이래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확산되고 있음을 파악하고, 마을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평소 친분이 있던 장암리(墻岩里)의 홍윤식(洪倫植)에게 이와 같은 생각을 피력한 결과, 적극적으로 동의하여 대성리의 만세시위를 추진하였다. 4월 2일 집으로 홍윤식을 불러 함께 7장의 태극기를 제작하고, 마을 주민들에게 나라의 독립을 희망함에 다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자고 호소하는 등 구체적으로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이날 밤 만세시위에 찬성의사를 밝힌 30여 명의 주민들이 동참해 오자, 이들을 규합하여 대성리의 뒷산으로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태극기를 흔들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절규하는 횃불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이후 대성리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었다는 소식을 접수하고 횃불만세시위 참여자들을 조사, 색출하기 위해 이 지역으로 출동한 일제 경찰에 만세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붙잡혀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4월 23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아 항소하였다.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함에, 5월 1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이 취소되었으나, 동일한 죄명으로 동일한 형량인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본인의 행위는 조선민족으로서 정의, 인도(人道)에 근거하여 의사 발동한 것으로 범죄가 아니므로, 제1심 및 제2심에서 받은 유죄 판결은 부당하며 위법(違法)한 것이므로 복종할 수 없다”는 취지로 상고하였다. 그러나 6월 14일 고등법원에서 이유 없음으로 상고 기각되어 징역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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