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純植
趙純植1901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김제청년연맹
- · 신간회 김제지회
- · 전북 통의부
포상 정보
- · 애족장(2018)
관련 사건
- · 전북 통의부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8) 전라북도 김제군(金堤郡) 공덕면(孔德面) 마현리(馬峴里) 출신이다. 판결문에 따르면 1930년 당시 30세이므로 1901년생으로 추정된다. 1920년대 중반 이후 김제에서 청년운동을 주도하였다. 1925년 12월 20일 김제군에서 김제청년연맹(金堤靑年聯盟) 발기를 위한 준비위원으로 선정되어 활동하였다. 1926년 8월 3일 ‘모중대사건’ 관련 혐의자로 경기도경찰부(京畿道警察部)에 붙잡혔다가 9월 2일 풀려났다. 1927년 6월에는 동아일보사(東亞日報社) 김제지국 공덕주재기자(孔德駐在記者)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 11월 27일 김제청년동맹의 검사위원(檢査委員)으로 선정되어 활동하였다. 신간회(新幹會) 김제지회의 설립과 활동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다. 1927년 7월 3일 읍내 만화루(萬化樓)에서 개최된 신간회 김제지회 설립대회에 부의장으로 참여하였다. 1928년 1월 29일에는 제2회 정기대회 대의원으로 경과보고를 하였고, 그해 6월까지 신간회 김제지회의 정치문화부 책임·부회장·대의원 등을 역임하였다. 1928년 4월 8일에는 익산청년동맹(益山靑年同盟) 창립대회에 참여하여 축사를 하기도 하였다. 한편 1927년 김제노동조합장이자 신간회 김제지회 상무간사인 전기환(全崎煥) 등과 함께 전북 통의부 사건에 연루되었다. 이는 통의부(統義府) 계통에서 활동하던 조인현(趙仁賢)이 귀국해 지폐위조·폭탄제조·총기밀수 등을 통해 관공서·은행·특수회사 등을 파괴하고, 거액의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려다가 검거된 사건이다. 전기환으로부터 그해 (음)7월 하순경 권총 1자루와 실탄 14발의 보관을 부탁받고, 이를 1928년 11월 경까지 자택의 항아리에 은닉하였다. 그러다가 전북 통의부 사건에 연루되어 1928년 6월 2~3일 전기환·소혁규(蘇赫奎)·송시용(宋始鏞) 등과 함께 이리경찰서(裡里警察署) 경찰에게 붙잡혔다. 1930년 3월 12일 전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 총포화약류 취체령 동 시행령 위반, 공갈죄로 징역 6월(미결구류일수 중 150일 본형에 산입)을 받았다. 전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다가 그해 4월 15일 형 집행 만기로 풀려났다. 같은 해 12월에는 동아일보사 김제지국장으로 임명되었다. 1931년 10~11월에는 김제지역 정미소 인부들의 임금인상문제의 배후 선동자로 지목되어 김제합동노동조합(金堤合同勞動組合) 간부 김혁진(金革進)·오오득(吳五得) 등 17인과 함께 다시 전라북도경찰부에 붙잡혔다가, 같은 해 11월 16일 풀려났다. 1932년 1월 15일에는 김제 읍내 『전북일보』 지국에서 거행된 김제기자단(金堤記者團) 창립발회식에 『동아일보』 대표로 참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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