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池道元

池道元

1879. 2. 24 ~ 1946.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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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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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槐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괴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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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2)

관련 사건

  • · 장연면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2) 1879년 2월 24일 충청북도 괴산군(槐山郡) 장연면(長延面) 오가리(五佳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였다. 이명은 지민수(敏洙)이다. 1919년 4월 1일부터 2일까지 충북 괴산군 장연면에서 김의현(金義玄)·김의대(金義大)·정해문(鄭海文) 등과 함께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장연면의 만세운동은 고종의 인산에 참례하고 귀향한 유생 김의현·김의대 형제로부터 시작되었다. 김의현 등은 서울에 체재하던 중 당시 학생들의 주도로 전개되고 있던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이에 크게 공감하여 고향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겠다고 결의하고 귀향하였다. 서울의 만세운동 상황과 장연면에서의 만세운동 계획을 김의현 형제로부터 듣고, 양신집(梁信集)·김일곤(金日坤)·정해문 등과 함께 적극적으로 찬성하여 만세운동을 추진하였다. 양신집 등과 협의하여 만세운동의 거사일을 4월 1일로 결정하고, 독립선언서와 태극기 수백 장을 제작하였다. 4월 1일 오후 7시 김의대 등과 함께 오가리의 주민 100여 명을 규합하여 장연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주민들을 지휘하여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였고, 일제의 말단 식민통치기관으로 주민들의 원성이 높았던 면사무소를 공격해 건물의 일부를 파괴하고 해산하였다. 그러나 장연면의 만세시위는 끝나지 않고, 다음날로 이어지며 지속되었다. 이날 밤 김의현으로부터 회의소집 통보를 받고 참석하여 만세시위에 참여했던 주요 인물 30여 명과 함께 다음날의 계획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 회의에서 김의대는 다음날인 2일 밤 면사무소를 다시 공격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김의현은 동생 김의대의 의견에 동조하여 ‘4월 2일 밤 면사무소를 습격하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칠 예정이다. 만일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그 마을을 파괴하겠다’는 내용의 통문(通文)을 작성해서 장연면 내의 추점리(楸店里)·광진리(廣陳里)·방곡리(方谷里)·조곡리(鳥谷里) 등 각 마을에 회람시켜 만세운동 동참을 독려하였다. 다음날인 4월 2일 밤 김의현·김의대·정해문·양신집·김일곤 등과 함께 주민 300여 명을 규합해 집합하였다. 김의현의 지휘 아래 큰 목소리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면사무소를 공격하였다. 돌을 던지고, 곤봉 등을 사용하여 건물을 파괴하고, 각종 기구·집기·장부들을 파손시켰다. 『민적부(民籍簿)』 9권을 뺀 모든 서류를 찢어버렸고, 면장의 사택도 파괴하였다. 이와 같은 격렬한 만세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한 일제 헌병대와 연풍면(延豊面)에서 주둔하던 보병파견대에 의해 체포되었다. 일제 경찰의 조사를 받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는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919년 5월 8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및 소요죄로 징역 8월을 받았다. 판결에 불복하여 항소하여 6월 20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의 일부가 취소되어 징역 6월로 감형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으나, 8월 16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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