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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선

金貴善

1913. 12. 19 ~ 2005.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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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김귀선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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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寶城)학생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보성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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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 소녀회

포상 정보

  • · 건국포장(1993)

관련 사건

  • · 광주학생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1993) 1913년 12월 19일 전라남도 보성군(寶城郡) 벌교면(筏橋面) 장좌리(長佐里)에서 태어났다.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2학년 때인 1930년 1월 초순 군산공립고등여학교로 전학하였으나 곧바로 퇴학당하였다.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光州女子高等普通學校)에 재학할 당시는 학생 비밀결사인 성진회(醒進會)가 학교 단위의 자조직 확산을 위해 해산하고, 근우회(槿友會) 등 여성운동 단체의 설립과 활동이 활발해지는 때였다. 이에 장재성(張載性)의 여동생으로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장매성(張梅性)이 주동이 되어 박옥련(朴玉連)·고순례(高順禮)·장경례(張慶禮) 등을 중심으로 여성 해방·조국 해방 및 경제적 해방을 목적으로 소녀회(少女會)를 결성하였다. 이들은 매달 1회씩 토론 연구회를 가졌으며, 매달 10전의 회비로 책을 사서 연구하기도 하였다. 특히 학교 단위 비밀결사 조직인 남학생 독서회와 긴밀한 관계를 갖고 공동전선을 구축하였다. 1929년 5월에 비밀결사 소녀회에 가입하여 학생운동을 시작하였다. 1929년 11월 3일 한국인 여학생에 대한 일본인 남학생들의 희롱이 발단이 되어 대대적인 학생운동이 일어났다. 광주학생항일운동 때에는 한 손에 약과 붕대를, 한 손에는 주전자를 들고 시위에 참여하였다. 운동은 시위 학생들이 구속되는 가운데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분위기였다. 여학생 등은 이듬해 1월 1일 이에 항의하는 한편 시험을 거부하는 백지동맹(白紙同盟)을 단행하였다. 학교 당국은 백지동맹 주모자 4명에게 퇴학, 가담자 37명에게 근신 처분을 내는 한편 학부형에게 자퇴를 권유하였다. 1월 15~16일경 경찰이 여학생 12명을 곧바로 검거할 때 포함되었다. 소녀회는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각되어 장매성을 비롯한 관련 여학생들이 모두 검거되었다. 경찰은 검거 이유로 이들이 근신하지 않고 학교 측과 충돌하며 백지동맹을 벌이는 한편 수감생들을 위해 모금하는 등 ‘불온행동’을 계속하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일부 여학생들은 폭압적인 검거에 반발하여 자퇴하기도 하였다. 1930년 10월 6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집행유예 5년 형을 선고받기까지 약 9개월의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김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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