陳澤龍
陳澤1873. 8. 3 ~ 1944. 9.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08)
관련 사건
- · 정평군 만세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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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08) 1873년 8월 3일 함경남도 정평군(定平郡) 고산면(高山面) 신풍리(新豊里)에서 태어났다. 의생(醫生)으로 1919년 3월 17일 정평군 고산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함경남도에서는 천도교와 개신교 조직을 기반으로 만세운동 소식이 전파되었으며, 동시에 독립선언서가 전달되었다. 3월 1일 이후 함흥군과 기타 지역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된다는 소식이 정평군에 알려졌으며, 3월 2일 밤 부내면(府內面) 읍내 일대에 독립선언서가 뿌려졌다. 일제 헌병대는 정평군 일대에 만세시위 차단을 위해서 독립선언서 16장을 신속히 압수하고 주변 경계를 강화하였다. 일제 당국의 사전 조치에도 불구하고 정평군 일대에서는 만세시위를 추진하기 위한 준비가 진행되었다. 3월 17일 정평군 고산면 풍송리(豐松里)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오전 10시 무렵 신풍리에는 덕흥리(德興里)·흥봉리(興峯里) 주민 700여 명이 북을 치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모였다. 그러자 신풍리 마을 주민인 이학린(李學璘)·고하원(高河源)·송진헌(宋進憲) 등과 함께 덕흥리와 흥봉리 주민들과 함께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북을 치면서 고산면사무소로 행진하였다. 송진헌(宋進憲)·박정림(朴正林)·이용각(李龍珏)과 함께 고산면사무소로 진입하였다. 송진헌 등과 함께 직원들의 업무를 중단시켰으며, 면서기 박계환(朴桂煥)에게 폭력을 가하였다. 송진헌·박정림·이용각은 면회계원 강봉조(姜鳳朝)를 구타하였다. 풍서리에 사는 박영환(朴永煥)은 같은 마을에 사는 훈장 정구갑(鄭龜甲)에게 만세시위를 주도해 줄 것을 설득하였다. 이에 찬동한 정구갑은 마을 사람 400여 명을 인솔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풍송리헌병주재소로 이동하였다. 박영환은 마을 사람들에게 손병희 선생이 “조선 13도에 조선독립선언서를 반포하여 각지에 만세”를 외치고 있음을 알리면서 만세시위를 독려하였다. 일제 군경은 고산면 일대에서 발생한 만세시위를 해산시키고,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인사들을 체포하였다. 정평군 고산면 풍송리 시위에 참여해서 회계원을 폭행하고 면사무소 사무를 방해한 혐의로 붙잡혀서 재판에 회부되었다. 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8월 21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정의인도에 기초한 의사발동으로 범죄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상고하였으나, 그해 10월 23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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