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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平軒

陳平軒

1897. 9. 19 ~ 1970.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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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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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통영(統營)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통영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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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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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7년 9월 19일 경상남도 통영군(統營郡) 통영면(統營面) 일서정(日署町)에서 태어났다. 개신교도이자 배재고등보통학교 학생으로 1919년 3월 13일 통영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 이후 통영면의 일제 군경들은 서울 소재 고등보통학교에 다니던 학생들이 귀향하였다는 소식을 접하고 경계를 강화하였다. 통영면 내에서는 청년 대표들이 모여서 만세시위를 비밀리에 준비하였다. 배재고등보통학교 생도로서 3월 1일 만세시위 직후 통영면에 내려왔다. 통영면에서 각계 청년 대표인 권남선(權南善)·김형기(金炯綺)·양재원(梁在元)·배익조(裵益祚)·모치전(牟治田)·강세제(姜世濟)·허장완(許章完), 그리고 통영면 면서기 이학이(李學伊) 등과 함께 송정택 및 김기정 집에 모여서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통영면 만세시위에 사용할 목적으로 ‘동포에게 격하노라’라는 제목의 격문을 작성하였다. 양재원과 배익조는 3월 13일 통영면사무소의 등사판을 가지고 신양면사무소로 가서 격문 1,200장 가량을 인쇄하였다. 그런데 등사에 사용한 용지 2,000장을 구입한 곳은 일본인이 운영하는 중촌상점(中村商店)이었다. 이를 수상히 여긴 상점 주인으로부터 신고를 받은 일제 경찰은 즉시 수사에 돌입하였다. 결국 3월 14일 새벽 1시 30분경 강세제·이학이·허장완이 격문 인쇄에 사용한 등사판을 돌려주기 위해서 통영면사무소로 가다가 매복 중이던 형사에게 붙잡혔다. 이어서 새벽 3시경 통영면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형사들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이 일로 1919년 5월 8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해서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6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바로 상고하였지만 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최종 기각되고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풀려난 이후로도 각종 사회 활동과 독립운동을 계속해서 전개하였다. 1926년 당시 조선일보 통영지국의 기자이자 통영청년단의 총무로 활동하였다. 1928년에는 친일 강연장에 뛰어들어서 민족정기를 주장하다가 4개월간 복역하기도 하였다. 1930년 광주학생사건 당시에는 지하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935년에는 『벽신문(碧新聞)』을 발행하여 배일사상을 고취하고자 하였다. 1945년 2월 1일에도 사상범으로 기소되어 이른바 출판규칙 위반으로 부산지방법원 통영지청에서 재판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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